마음의 소리(수필)

몽당 빗자루(나도 기름새와 핑크 물리)

日陵 2025. 9. 10. 15:22

나도 기름새

 

핑크물리

 

천변을 걷다 지난번에 다녀온 경주 나들이 생각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손자 녀석이 학교에서 경주를 배웠다고 제 어미와 아비한테 경주로 여행을 가자고 조른 모양이다. 그래서 시작된 경주여행에서 첨성대 옆에 있는 핑크물리 공원을 거니는데 핑크물리라는 식물이 외국에서 들어온 식물로 우리나라에는 존재하지 않는 식물이라며 생소하면서도 아름다워 가을이면 갈대밭을 찾던 사람들이 핑크물리 밭으로 몰린다고 딸과 마나님이 설명을 해 준다.

 

나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원을 거닐면서 핑크물리를 살펴보니 내가 어릴 때 신작로 가에서 보았던 풀과 똑같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내가 길가에서 본 풀과 비교해 보니 핑크물리는 키가 크고 색깔이 핑크빛을 띠고 있는 것이 조금 다를 뿐 같은 과 식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핑크물리는 사람이 직접 재배하다 보니 키가 크고 집단으로 모여 있어 멋져 보이고 내가 본 식물은 자생적으로 이곳저곳에 듬성듬성 있으니 초라해 보인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한번 찾아보자고 산책길 이쪽저쪽을 살펴보며 걷게 되었다. 그러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 오랫동안 우리 집에서 사용하던 몽땅 빗자루가 떠오른다. 아마 내 나이 5살이나 되었나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어느 여름날 어머니는 밭에서 일하고 나와 동생은 신작로 가에서 놀은 기억이 있다. 그때 나와 동생은 풀의 모가지를 뽑아 갖고 놀았는데 그 후 어느 날인가 어머니는 그 풀 모가지를 뽑아 방 빗자루를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풀이 내가 경주에서 본 핑크물리라는 풀과 색깔만 다르고 똑같이 생긴 풀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풀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렸을 때 길가에서 그리 많이 보이던 풀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분명히 자생으로 냇가 옆 신작로 길옆에 무더기로 듬성듬성 많이 있었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을 가지며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은 도심 속의 잘 정리된 천변이라 그런 모양이라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찾아본 결과 2일째 아주 어린 풀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 포기를 발견하니 가끔 눈에 띄는데 왜 이곳은 이 풀이 그리 귀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곳 풀은 일 년이면 시청에서 인부를 드려 몇 차례 깎아 주니 식물이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지 못하기 때문에 모가지만 알고 있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라고 생각을 했다.

 

이처럼 풀을 찾으며 이 작고 가는 풀로 하나의 방 빗자루를 만들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풀 모가지를 모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어머니의 젊은 모습이 눈앞에 어린 걸린다.

 

16살 어린 나이로 같은 마을에 4살이나 나이가 더 많은 총각에게 부모님들의 성화에 아무것도 모르고 시집을 와서 두 사람의 손위 동서와 한 부엌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으니 기 한번 펼 수 없었을 것 같았다. 더구나 남편은 시골 양반네라는 부잣집 막내아들 철부지로 자라 힘은 세고 일을 잘했으나 아내에 대한 배려 심은 하나도 없었단다. 그러다 시집 이웃에 살림을 나 살다 큰아이를 낳고 둘째 아이를 낳자마자 한국 전쟁이 일어나 군대에 끓여 가 혼자 두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해야만 했단다. 그때 나이 고작 22살로 신혼의 맛을 알기도 전에 남편과 떨어진 것이다.

 

남편이 군대에 가서 집을 떠 난 지 1년이 지나자 간간이 오던 소식이 끊어지자 시어머니는 자기 막내아들이 혹시나 잘못되지 않았나 걱정하며 자기 아들의 소식이 없는 것은 어머니 때문이라며 들 복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큰집과 이웃에 있는 우리 집 울타리 일부를 걷어내어 모든 살림은 큰동서와 같이 한 부엌을 사용하며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단다. 그러다 보니 얼마나 고달 펐을까? 윗사람 눈치를 보느라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다섯 살 먹은 큰아들과 두 살 먹은 젖 먹는 아이를 데리고 살았으니 밤이면 혼자 눈물로 지새우는 날이 여반사였을 것 같았다.

 

내 기억은 어느 여름날 냇가를 따라 신작로가 있는데 그 옆 밭에서 어머니는 김을 매고 나는 동생과 같이 뽕나무 밑에서 놀다 신작로 옆에서 이 풀을 뽑으며 놀은 기억이 70년이 가까워지지만 아직도 뇌 한구석에 남아 있다.

 

동생과 내가 가지고 놀은 풀을 보고 어머니는 자기의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빗자루를 만든 모양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한이 많았으면 이 가늘고 가는 풀 모가지를 하나씩 뽑아 방 빗자루를 만들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하다. 그러면서 혹시 낫으로 베어다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지만 그것은 알 수가 없었다.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이 빗자루가 보드랍고 예뻤으며 어머니가 방을 청소하려고 하면 내가 뺏어서 쓸곤 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외갓집 할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수수 빗자루가 얼마나 커 보였는지 내가 사용하기는 힘이 들게 무거워 보였다는 생각을 하며 웃음이 나온다. 아마 외할아버지가 만들어준 빗자루가 정상적이었을 것인데 어린 내가 보기에는 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빗자루가 작고 예쁘니까 내가 좋아한 모양이라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 빗자루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도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중에는 끝이 달아 몽당풀비로 사용하여 창호지를 문에 바른다든지 장판지를 방바닥에 바를 때까지 사용한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 식물과 다만 색깔만 다르고 똑같이 생긴 식물이 외국에서 들어와 우리나라 자연 생태계를 파괴할지 모른다고 하니 나는 의문을 품고 찾아보고자 한 것이다. 우선 집사람에게 핑크물리라는 식물은 우리나라에도 서식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기 위하여 가까스로 발견한 작은 풀 모가지를 하나 뽑아다 보여주니 아니라고 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자생하지 않은 식물이라고 잡아뗀다. 나는 4일 차 이 식물을 찾다 철도가 지나가는 다리 밑에서 제법 커다라면서 열매가 약간 분홍색을 띤 이 식물을 발견하고 사진에 담아보니 너무 가늘어 잘 보이지가 않아 모가지 하나를 길게 잘라와 물병에 꽂아 놓은 다음 마나님에게 거짓말을 했다.

 

누가 핑크물리를 한 다발 들고 가길 네 한 가지만 달래어 가지고 왔는데 예쁘지?” 하니

참 할 일도 없네. 그런데 누가 이것을 가지고 갔을까?” 관심을 보이며 손으로 만져 본다. 분명 내가 뽑아온 식물도 살짝 핑크빛을 띠고 있어 경주에서 본 핑크물리와 구별이 어려웠다. 나는 웃으며

이것은 국산 핑크물리야. 내가 어렸을 때 고향에서 본 식물로 우리 어머니가 방 빗자루를 만들어 줘 내가 방 청소를 했던 그 풀이라고.” 하니

참 끈질기네?” 한다. 나는 한이 서린 어머님의 몽당 빗자루를 생각하며 이 풀이름이 무엇인지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핑크물리와 물리라는 식물을 검색해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자생하지 않은 식물이라고 나왔다. 나는 한국의 야생화를 검색해 보기로 했다. 그러자 이미지 속의 사진 중에 모양이 비슷한 사진을 검색하여 찾아 들어가 보니 어느 학자가 이 식물을 쥐꼬리풀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그는 쥐꼬리풀이 세 가지가 있는데 큰 쥐꼬리풀, 작은 쥐꼬리풀 등으로 나누고 내가 찾고 있는 이 풀은 작은 쥐꼬리풀이라며 쥐꼬리같이 생기지 않았지요?라고?  설명을 붙이고 있었다. 나는 힘 바람이 나 마나님에게 이 풀이 쥐꼬리풀이라고 큰소리치며 설명한 후 며칠이 지난 다음 다시 인터넷에서 쥐꼬리 풀을 검색해 보니 쥐꼬리 풀은 다른 식물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번 들어간 사이트가 어느 곳인가 찾을 수 없어 다시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이 식물의 이름은 나도 기름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식물의 분포지역은 중부 이남에 나며 일본, 대만, 중국 등에 분포하고 있으며 여러해살이풀로 키는 50~100cm라고 국립수목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사진까지 선명하게 올라와 나는 확신을 가지고 내 어머니가 젊은 나이에 남편도 없는 시집에서 같은 부엌에서 두 사람이나 되는 손윗동서와 같이 시부모를 모시며 자기의 한을 달래기 위해 밤새 날을 지새우면서 다듬고 다듬어서 만든 풀의 이름이 ‘나도기름새라는 식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풀이 내 눈에 잘 띄지 않았던 것은 내가 살던 고향은 남쪽 지방이었고 지금 사는 지방은 중부 지방인 천안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살짝 핑크빛이 도는 나도 기름새 풀 모가지 하나를 들고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면서 참 부드럽기도 하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이리 보고 저리 살펴보면서 어떻게 이것으로 빗자루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니 갑자기 기력이 쇠할 대로 쇠하여 이제는 혼자 않자 않을 수도 없는 구순이 지난 어머님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핑 돈다. 얼마나 남편이 그리웠으면 이 가는 식물 모가지를 하나씩 모아 그리 예쁘기도 예쁜 빗자루를 만들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하다.

 

2018.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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