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룸 숙소에서 본 히말리아(2016.10.15. 새벽)
엊그제의 일이다.
교직에 있는 셋째 딸아이가 장관 표창을 받았다고 호들갑이다.
허긴 자랑을 할 만도 하다. 지난 5월 스승의 날에는 교육감 표창을 받았다고 자랑이었는데 채 1년이 가기도 전에 장관 표창이라니 나의 소견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난가을 "공적을 쓸까요"라는 질문이 들어와 점잔 하게 사양을 하라고 했는데 자기네 학교에서는 대상자가 자기뿐이라고 윗분들이 내 보라고 하여 믿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상신을 했는데 나왔다는 것이다.
딸아이가 교직에 발을 디딘 지 고작 7년인데, 그중에 산휴를 1년 빼고 나면 실경력 6년짜리가 교육감 상장을 두 번이나 받았고 또 교육감 표창에 장관 표창이라니 학교장을 지낸 내 경험으로서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상장이야 노력이나 재능이 있으면 얼마든지 받을 수 있지만 표창장은 다르지 않는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상을 받으면 다 상장으로 생각하는데 상장과 표창장은 엄연이 구분이 된다.
즉 '상장은 잘한 일에 대하여 칭찬의 뜻을 글로 담아주는 증서'요.
'표창장은 특정한 성과나 행실에 대해 상을 수여하는 내용의 문서로 어떤 공적이나 선행을 드러내어 밝히고 이를 치하하는 문서'를 말한다.
상장의 예를 들어보면 미술실기대회라든가 응변대회 및 음악콩쿠르대회와 같이 대회에서 입상하는 경우 등급이 있다. 그러나 표창장은 등급이 있는 것이 아니라 특이한 공적이 있어야 하고 공적 조서가 필요한 것이다. 즉 선행상이나 효행상 및 공로상등을 들어 볼 수 있겠다.
그러다 보니 집단에서 표창장을 받는다는 것은 집단의 동료들보다 뚜렷한 공적이 있어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그 녀석이 학교에서 근무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아빠로서는 무능하게만 보였는데 제 딴에는 쾌 노력을 한 모양이다.
갓난 아기 엄마가 매일 퇴근 시간이 늦고 툭하면 출장이니 무능한 교사가 않이냐고 곧 잘 놀여주어 화를 돗구기도 하였는데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 모양이다.
중학교에서 교육감이나 장관 표창은 교육청 단위로 제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 쉽지 않은 상인데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허긴 학교마다 사정이 다르니까 이유가 있으니 주었겠지 하면서 지난날의 나를 되돌아본다.
나는 초등학교나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 표창장은 그만두고 상장 한 번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다. 그 흔한 개근, 정근상도 단 한 번도 못 받았으니 상복이 없었나 지지리도 못난 나 하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때는 집안 일손을 도와 농번기 때는 툭하면 결석을 하고 동생들을 봐줘야 했으니 못 받았고,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는 수업료를 제 때에 내지 못해 학교에 가도 출석정지로 결석을 당하던 가난뱅이였으니 개근상이나 정근상을 받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학업 우수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내가 최초로 상장을 받은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농업고등학교에서 가을에 실시하는 '농산물 품평회'였다. 내가 제출한 작품이 '최우수'를 받은 것이다. 그때 만든 작품이 프랑크톤을 이용하여 '미래의 식량과 가축 사료' 였었는데 지금 내 머리 속에는 그 때 플랑크톤의 이름도 사라졌다.그리고 최초의 표창장은 군에 있을 때 중대장 표창장을 받아 포상 휴가를 일주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는 상이란 상은 없었는데 직장에 나와서는 賞 福이 넘쳐 났다.
교직에 나와 2년 차가 되던 해 교육장 표창을 받았고 다음 학교에서도 2년 차에 또 교육장 표창을 받아 4년 만에 교육장 표창만 두 번 받았다. 원래 이동이 잦은 나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인사 이동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군 교육청과 도교육청에서 인사조치를 하였고 네 번 째는 도간 인사교류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훌쩍훌쩍 날아다닌 것이다.
학교마다 일 년 아니면 이년 씩 근무하다 네 번째 학교에서 처음으로 4년 반을 근무 했는데 이 학교에서도 기껏 교육장과 군수 표창을 받은 것이다. 교육감 표창을 주는 줄 알고 좋아 했는데 교육장 표창이 나오자 나는 불만의 표정을 지었다. 이를 안 교감 선생님 말씀이 교장선생님이 상을 받은 내가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상당히 화가 났다고 이야기 해 준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러다 다섯 번 째 학교에서 처음으로 교육감 표창을 받았다. 그러나 그 상은 분명 학교에서 공적조서는 장관 표창을 상신했는데 시군 교육청에서 교육감 표창이 없으니 교육감 표창부터 받으라고 교육감 표창을 주었단다. 그게 바로 핑계가 않인가? 다른 학교 선생님에게 장관 표창은 주고 나는 교육감 표창이 없다는 구실로 교육감 표창을 줌으로 학교 간의 경쟁을 정리한 것이다. 이렇게 어렵게 교육감 표창을 받은 것이 교직 14년 만에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해 나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공로를 인정받아 교육부에서 각 시도에 한 사람씩 주는 장관 표창을 받은 것이다. 그 공적의 내용은 "민주시민교육"이었다.
이와 같이 표창이 어려웠던 것은 대통령 표창부터 승진 가산점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대통령이나 그 위 표창을 받기 위하여 치열한 경쟁을 하든 때였다. 그러다 보니 아래 직책의 표창부터 점차적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어려웠던 시절이다. 이와 같이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부정이 있다 하여 승진 가산점에 표창에 대한 점수를 삭제해 버리고 다만 인사이동 때에만 가산점으로만 사용하게 되었다.
퇴직까지 내가 받은 표창을 다 정리해 보니 교육장과 군수 4회. 교육감 4회, 장관 2회와 퇴임 때 받은 훈장까지 11회로 나름대로 체면은 세운 것 같다. 그리고 상장은 현장연구에서 9회, 연수에서 1회 등 총 열 차례를 받았으니 이 정도면 체면치레는 한 것 같다. 그리고 상장 중에 교감 자격연수에서 일등 한 공로로 금강산 연수를 덤으로 받았으니 얼마나 행운의 상인가?
학창 시절 남들이 상을 받을 때 부러워서 나도 내년에는 꼭 받아야지 하고 마음속으로 뇌 아리던 초등학교 시절 기억이 뇌리에 남아 있는데 직장에서는 33년 남 지지한 경력에 21번의 상장을 받았으니 그 정도면 賞 福이 없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딸아이는 즈 아비를 훨씬 뛰어넘어 이제 시작한 애송이가 장관 표창이라니 아비로서 자랑스러워 헛소리를 지끄려 본 것이다.
상이야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타고 부정한 상이나 공적이 없는 상을 받는다면 차라리 받지 않는 것만 못하리라.
딸아 축하한다.
네가 일하려 간다고 느 아이 안 봐줄 아빠 않으니까 얼마든지 맡기고 열심히 살아 보거라.
2017.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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