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리(수필)

마음의 변화

日陵 2025. 9. 21. 08:12

 

오늘은 내 인생 제2막의 직장에 첫 출근 하는 날이다. 첫 출근이라고 생각하니 애매하기도 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청에 임시 직원으로 들어가 사회 직장의 첫 출근이 있었으나 느낌이 남아 있지 않고 대학을 졸업하고 1년이나 지난 후 교사 임용 고시에 합격하여 출근하던 1977년 3월 27일은 잊을 수 없는 희열의 기쁨이 있었다. 그리고 전출할 때마다 새로운 학교에 처음 출근하는 날은 긴장감과 어색함을 느꼈으며 교감으로 승진하여 첫 출근 할 때의 기쁨과 교장으로 승진하여 첫 출근 할 때의 기쁨은 말로 쉽게 표현할 수가 없는 기쁨을 느낀 것이다.

 

그러다 2010년 8월 말일로 공직에서 물러나 집에 있다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선 것이다. 국가에서 나이가 들었으니 그만 쉬라고 정년퇴직을 시켰으니 놀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한 때는 골프채를 가지고 2~3년 놀아 봐도 별로 재미가 없어, 어렸을 때 부모님들한테 잠재적으로 배운 농사 기술을 되살려 근 7~8년 밭농사를 해 봤다. 내 취미는 'Field(밭) 가꾸기'라고 큰소리치며 이것저것 없는 것 없이 종류도 다양하게 밭농사를 근 1,000평 짓기도 했다. 이런 생활은 책상에서만 살다 삽을 들고 설쳤으니 몸이 온전할 리가 없다. 결국, 척추 디스크 파열과 협착증이란 병으로 수술을 받은 후 허리 근육을 강화하기 위하여 매일 걷기 운동을 시작한 지 벌써 5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이처럼 크게 신경 쓰는 일 없고 운동에다 적절하게 노동을 하니 몸이 50~60대 현직에 있을 때보다 달라 보이게 건강해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겨울철에는 농사일이 없으니 집에서 보내는 것이 무례하여 틈만 나면 걷기를 한 것이다. 하루 평균 26,000보 이상을 4개월이 넘도록 걷고 또 걸었다. 눈이 와도 날씨가 추워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벽에도 걷고 아침 먹고 걷고 또 쉬었다가 점심 먹고 걸으니 지루한 줄 모르고 시간을 잘 흘러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걷는 것은 문제가 없는데 소변이 자주 마려웠다. 특히 추운 날은 증세가 더욱 심하여 한 시간을 버티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면 병원을 바로 찾아갔으면 좋으련만 성격이 병원을 싫어하여 참고 겨우내 버티었다. 어느 날은 2시간 걷는데 세 번은 소변을 봐야 하는 경우가 나타났으며 저녁에 잠을 잘 때 두 시간이 멀다고 잠에서 깨는 것이다. 속으로는 전립선 비대증이 나타난 모양이라고 혼자 추측하고 있었다. 나이가 먹어가니 많은 친구가 전립선 비대증 이야기를 하여 나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참고 살다 겨울이 다 간 어느 날 무슨 바람이 불었나 비뇨기과를 찾아갔다.

 

소변 검사를 하고 피 검사를 하더니 약을 1주일분 처방해 준다. 나는 궁금하여 이유가 뭐냐 물으니 인상 좋은 의사는 웃으며 전립선은 아직 괜찮고 피에 이상이 있단다. 내 마음속에 내 피는 깨끗한 거로 알고 있기에 피에 무슨 이상이냐고 물으니 속 시원히 대답은 안 해주고 피에 염증이 있어서 그러니 1주일 약을 먹은 다음 소변은 세 시간 참은 다음 와서 검사를 다시 해 보잔다. 1주일 약을 먹으니 밤에 소변보는 것도 한차례 정도 줄었고 상당히 좋아진 기분이다. 일주일 후 소변을 3시간 참고 병원을 찾아가니 다시 소변을 보라는데 소변을 볼 수가 없었다. 소변을 참기 위하여 아침에 대변을 보지 않았으니 소변을 보면 대변을 봐야 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방법이 없어 오후에 다시 오기로 하고 대변을 본 다음 다시 세 시간 후에 병원을 찾아가니 항문의 초음파 검사와 소변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초음파 검사도 이상이 없고 방관도 아직 버틸 만하단다. 그러면서 약을 10일분이나 약을 처방해 준다. 그러고 10일 후에 다시 피검사를 하잔다.

 

10여 일이 흘러갔다. 그동안 소변 보는 것은 상당히 좋아 젖으나 얼마나 좋아져야 다 좋아진 것을 알지 못하니 병원을 찾을 수뿐이 없다. 다시 피검사를 한 결과 좋아 젖단다. 나는 무엇이 좋아진 것이냐고 물으니 비대증 수치가 낮아 젖단다. 바로 소변이 자주 내리던 것은 비대증 수치가 높았기 때문이란다. 완전히 좋아진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낮아 젖으니 또 증세가 나빠지면 오란다. 나는 비대증 수치를 낮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다. 의사는 담배를 피우냐고 해서 끊은 지가 15년이 넘었다고 하니 술은 많이 먹느냐고 물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마시는데 그때는 소주 2병은 마신다고 하자 운동을 많이 하나고 문 는다. 하루 25,000보 정도 걷는다고 했더니 걸음 숫자를 만 보정도로 줄이란다. 허리를 강화하고자 걷고 또 걸었더니 너무 과하여 비대증 수치를 높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 모양이다.

 

 

걷는 것을 줄인다고 생각하니 걷었던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것이 내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운전을 좋아하니 운전을 이용하여 할 일자리를 찾다 보니 아주 적당한 일자리가 나왔다. 바로 장애인 돌보미로 아침저녁으로 장애인을 이동시키는 일자리를 구하게 된 것이다. 참말로 사람 많이 변했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내 성격에 변화가 온 것이다. 예전 같으면 교장 체면에 '뭐 장애인 이동 도우미를 해' 하며 펄쩍 뛰었을 것이나 봉사하는 사람들을 TV를 통하여 보니 나도 못 할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수는 아주 적으나 돈이 있어야 하는 사람도 아니고 아침 새벽에 운동하고 아침 먹고 도우미 일을 한 다음 내 농장에 가 서너 시간 일하고 오후에 다시 도우미 일을 하면 하루해가 짧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있는 권위와 체면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살아난 모양이다. 이렇게 변하기까지 걸인 시간이 8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이다.

 

퇴직하고 한때 점잖게 혼자 고독을 즐기며 살겠다고 머리 염색에서 벗어나 완전 백발 머리를 한 채 4년을 살아 보니 스스로 마음에서 늙었다는 생각만 들고 내 생활이 위축되는 것을 느껴 염색을 다시 했다. 그러니 다시 내 몸에 활기를 느낀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외모의 변신뿐이 아니라 마음의 변신을 시도해 보자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하기로 결심하자 마음에서 평온이 찾아온다. 잘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조금 있었지만, 세상살이 70년이 넘다 보니 두려운 것이 없다. 언제부터인가 마음에 여유가 생겨 전에 하지 않던 말도 곳 잘 조잘대는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오늘은 일을 시작하는 첫날이다. 평상시와 똑같이 새벽에 일어나 아침 운동을 나간다. 겨울이 다 간 줄 알았더니 아직 늦추위가 있는지 제법 쌀쌀하다. 열심히 두시간 가까이 걷기도 하고 천변에 있는 헬스 기구에 붙어 운동하고 집으로 들어오면서 현관문을 여니 집안에서 고소로운 음식 기름 냄새가 내 코에 진동한다.

"서방님 첫 출근이라고 맛있는 밥상을 차리나 봐."라고 웃으며 익살을 부리니 마나님

"그려. 그동안 놀고먹는 것이 안쓰러웠는데 일을 한다니까 좋아서."라고 농으로 응수하는 70먹은 할망구가 사랑스러워 보인다. 나머지 인생 이것저것 눈치 보지 말고 억 깨를 펴고 내 마음대로 당당하게 살다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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