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꼴 머슴이 가져다 준 노년의 행복 3(하)

日陵 2025. 9. 26. 16:47

수확한 완두콩 모습

 

그러다 보면 죽어라 가꾸어 놓은 농작물 밭이 풀밭으로 변해버린다. 이렇게 풀밭으로 변하는 것을 막으려고 어떤 사람은 제초제를 사용하는데 생각이 있는 사람은 자기 농작물 밭에 제초제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제초제를 사용하면 아무래도 작물에 영양을 줘 인체에 해로울까 봐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풀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 번은 친구들과 회식 자리에서 농사 이야기가 나왔다. 모두 다 현직에 있을 때는 중·고등학교에서 교장을 지냈던 사람들이다. 다들 젊어서 열심히 살은 보람으로 먹고사는데 크게 걱정이 없다 보니 그중 삼 분의 일은 취미 생활로 농작물을 조금씩 가꾸며 시간을 보냈다. 농고에서 교장을 지냈으며 목장을 하다 자그마한 야산을 사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심 교장이

에이, 그놈의 풀 징그러워하고 한탄스러워하는 소리를 듣고 옆에 있던 내가

풀 그거 뭐가 무서워하니까 그 소리를 들은 다른 친구가

풀 때문에 어디 농사짓겠어.” 한다. 그때 내가

풀을 제때 매 줘야지하니

언제가 제때인데하며 농고 교장이었던 사람이 반문하자, 나는

풀은 초기 올라올 때 서양 괭이로 싹싹 긁어 주면 없어지는 거야?”

그려? 김 교장은 농사일을 하나도 모를 것 같은데 농고 교장보다 낫네.”

왜 이래, 내가 농고 출신이라는 것 몰랐어.” 그러자 농사일은 전혀 하지 않는 친구가

들어 보니 심 교장은 농대 출신이다가 농고 교장을 했는데 오히려 김 교장이 농사일을 더 잘 아는 것 같은데한다. 그러자 심 교장은

나는 농기계과 출신이라 농기계는 잘 알아도 밭농사는 잘 몰라한다.

 

우리 세 사람은 모두 농업고등학교 출신으로 심 교장은 농고를 졸업하고 농기계과로 유명한 서울에서 농대를 졸업한 사람으로 대부분 농고에서 교장까지 한 사람이고, 한 사람은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육대학을 나와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다 중등학교로 올라와 교장까지 한 사람이다. 나도 역시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반 법대를 졸업한 후 중·고등학교에서 교장 생활을 한 사람이다.

 

그러니 누가 보아도 법대 나와서 일반 학교에서 근무한 사람보다 농대를 나와 농업고등학교에서 교원 생활을 한 사람과 비교한다면 누가 농사에 대하여 잘 알 것인가 빤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반대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이런 것이 잠재적 교육과정인 모양이다. 세 사람은 다 같이 농촌에서 태어나 농사짓는 집에서 자라며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성장 과정이 조금씩 서로 달랐다.

 

심 교장이란 사람은 농사 집에서 자랐지만, 아버지가 면사무소에 다니신 공무원 집 자녀로 어렸을 때 자기가 직접 농사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도 농사일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 간혹 부모님 일손은 도와주었지만 직접 해 보기보다는 어깨너머로 본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직접 어린 시절 농사일을 체험한 사람이다 보니 재래식 농법에서는 내가 한 수 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젊어서 열심히 산 보람으로 내가 살아갈 집 한 채는 있고 자녀들도 다 출가하여 따로 살림을 차리고 있으니 돈도 필요 없다. 다만 걱정이 있다면 노년에 몸이 건강해야 하니 건강을 지키기 위하여 몸에 무리하지 않게 꾸준히 걷기 운동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하여 자연의 식물과 가까이할 수 있는 것이 밭 가꾸기가 제격이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런 밭 가꾸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 듯 보기에는 누구나 땅에다 씨앗을 뿌리면 되는 줄 아는 데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밭을 일구고 거름을 적당히 주어야 하며 수분도 맞추어 줄 줄 알아야 한다. 그런가 하면 작물의 특성에 따라서 조금씩 재배 방식이 다르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한때는 괭이자루를 잡으면 성을 바꾼다고 했는데 이제는 성을 바꿀지언정 잡아야겠다. 노년의 내 건강을 지켜주고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것이 밭 가꾸기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나는 농업경영 등록 체에 농업경영인이라는 등록도 하고 명함에 농장대표로 직업은 농업경영인이라고 기재하고 다니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렇게 사는 나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신기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친구들도 지금 뭐 하냐고 물어오면 "밭에 나가서 놀아" 하면 이상하게 생각한다.

어떻게 농사를 지어"

풀을 어떻게 매"

힘들지 않아하며 농사짓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 같이 말을 한다. 그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내가 그동안 중·고등학교에서 교장을 하다 퇴직한 사람이 무슨 농사를 지을 줄 알겠느냐는 식이다. 그러나 나는 농사일에는 자신이 있다.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한 것도 있지만 어려서 직접 일을 해 보고 어깨너머로 부모님에게 배운 잠재적 교육과정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게 농사를 잘 지었다. 풀을 이겨내고 가뭄을 방지하기 위하여 비닐을 사용하는데 다른 사람들과 같이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비법을 사용하여 농작물에 가뭄이 타지 않도록 했다김을 매는데도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풀이 크기 전 싹이 트면 서양 괭이로 곡식에 붙을 주면서 긁어 버리니 풀은 살 수가 없고 곡식은 더 잘 자란다. 이런 농법으로 심심풀이 1~2백 평이 아니라 이곳저곳 합치면 1,000여 평이 넘는 밭을 별로 힘들이지 않고 관리하니 신기할 것이다.

 

이렇게 몇 년간 농사를 짓다 보니 이제는 제법 박사가 되었다. 감자 씨앗을 일찍 올리려면 감자를 심은 다음 비닐로 멀칭을 한다든지 고구마를 심을 때는 밭이랑에 수분이 흡족할 때 비닐로 멀칭을 한 다음 이식을 한다든지, 아니면 멀칭을 하고 모종 심을 자리에 일일이 물을 주고 심는다든지 들깨 묘나 콩 묘를 이식하려면 심을 이랑에 물을 흘려보내고 심으면 잘 산다는 것도 터득하게 된 것이다. 그보다 더 신기한 것은 마늘 종자를 통마늘을 사용하지 않고 마늘종에서 나오는 씨앗을 활용하는 방법까지 터득했으니 분명 박사가 된 모양이다.

 

요즘은 이처럼 농사를 짓는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쾌 많이 나타났다. 그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어려서 가정이 나름대로 부유하여 농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친구들이거나 부모님이 농업에 종사하지 않고 다른 직업에 종사했던 친구들이다. 처음에는 나를 비웃었는데 가진 것은 시간뿐인 노인들이다 보니 아침만 먹으면 밭으로 나가는 내가 부러운 모양이다.

 

내가 생각해도 늙어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했다. 직접 땅을 파고 씨앗을 뿌리고 가꾼 작물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열매 맺는 것을 보면 신기도 하고 자랑스러웠다모든 씨앗이 처음 촉을 띄우고 나오는 떡잎을 바라보고 있자면 어찌나 그리 청순하고 곱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꼭 어린아이의 고사리손 같은 느낌을 밭는다그리고 내가 먹고 싶은 작물은 거의 다 자급자족하고 남은 생산물은 이웃에 나눠 주기도 하며 대량으로 생산한 것은 조금씩 판매도 하는데 이제는 제법 수입도 짭짭한 농부로 변한 것이다

 

이와 같은 내 생활은 누구에게 얽매여 있지 않은 것이 가장 행복했다. 일하다가도 볼일이 생기면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얼마든지 일을 볼 수 있으며 몸이 힘들다고 생각되면 쉬면서 하면 되고, 여행을 가고 싶으면 얼마든지 다닐 수 있는 자유 직업인이다.

그뿐인가 혹시 일을 잘못한다고 나무랄 사람도 없고 농사가 잘못되었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다른 사람과 이해관계가 없어서 좋고 정년이 없으니 내 몸만 건강하다면 힘이 있는 동안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좋고, 틈이 나면 가족여행이나 산행도 즐긴다. 이런 내 생활을 친구들은 무척 부러워했다

 

이처럼 노년의 내 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은 농부 아들로 꼴머슴이었기 때문이 아니었겠는가어렸을 때 농부였던 부모님이 창피하게 느낀 적도 있었는데 나이를 먹고 보니 이렇게 고마울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이런 나를 돌아보며 옛날 아버지 어머니 생각에 농부라는 시를 한 수 지어 봤다.

 

 

농부

 

동이 트기 전 이른 새벽에 들녘을 거니는 사람 

이슬 떨이를 하며 논과 밭을 돌아보는 사람

 

허리가 끊어지게 아파도 호미질을 하는 사람 

옆구리가 결려도 괭이질을 하는 사람

  

아무리 햇볕이 따가워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

비가 아니 와도 괴롭고 너무 와도 괴로운 사람

 

그러나 무럭무럭 자라나는 곡식을 바라보며 

마음에 흐뭇함을 느끼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농부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