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멀어지는 인간 관계 4.

日陵 2026. 2. 21. 13:34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애 아빠 이야기가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7남매 맏이인데 어머니가 갑자기 몸이 안 좋아 죽는다고 하여 깜짝 놀라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자기는 결혼도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결혼을 서두르게 되었다지 뭡니까?”


시댁에 대해서는 사전에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았던 모양이지요?”

시집을 가라고 귀신에 쉬었나 보지 뭐.”

신랑이 얼마나 좋았으면 그랬을까?”

 

여하튼 이렇게 시작된 결혼 생활이 가난 속에 살면서도 나름대로 살림을 키워나갔지.

남편이 4학년 때 첫 딸을 낳고 졸업하면서 준비하던 시험에 떨어지자 가정 걱정이 되었는지 지금까지 준비하던 시험을 포기하고 쉽게 합격할 수 있는 교원 채용 고시를 준비하더라고요.

그런데,

객지에 가서 살라는 팔자인지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에서는 애 아빠의 과목을 뽑지 않아 강원도에 가서 시험을 봐 합격하여 교직에 들어갔지요.”

그러자 꽃님이 어머니가 궁금하다는 듯

그럼 강원도에서 교직을 시작했네요?”

예 첫 직장을 강원도에서 시작했지요.” 하자

강원도 어디에서 얼마나 살다 왔나요?”

속초에서 근 10여 년을 살고 이쪽으로 넘어왔지요.

그때 강원도에 살면서 둘째와 셋째를 낳고 비록 돈은 없어 피난민 집에서 살았지만, 걱정 없이 살았지요.”

 

속초는 아름다운 설악산도 있고 동해의 맑은 모래밭인 해수욕장도 있으니 재미있었겠는데요?”

봄이나 가을에는 설악동 계곡에 가서 놀고 여름에는 설악동 계곡이나 속초 해수욕장에 아이들과 다닌 것이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가난에 몸부림치던 추억도 같이 남아 있답니다.”

하긴 그 시절에는 모두 다 가난에 허덕이며 살았잖아요.” 하며 이사장이 알만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내가 허튼 이야기만 하고 있구먼?” 하면서도 계속 이야기를 이어 간다.

우리 부부는 가난 속에서도 큰아들과 큰딸 역할을 해 보겠다고 동생들이 결혼하면 부모님들에게 꼬박꼬박 결혼 비용을 시댁은 30만 원, 친정은 20만 원씩 보내드리라고 애 아빠가 신신당부를 하잖아요.

지금은 20~30만 원이 얼마 안 되지만 그때는 애 아빠 봉급이 6~7만 원 할 때라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지요.”

그럼 몇 달 치를 모았다가 들인 거야?”

친정은 20만 원씩 주라는데 화가 안 났어요?” 하며 젊은 어머니들이 한 마디씩 한다.

 

그때 사회는 남자 중심사회라 친정에 조금 적게 주더라도 주라고 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고맙게 생각되었지,

그리고 동생 한 사람 결혼하면 우리 집은 3~4개월 봉급을 모았다 주었는데 동생들은 그것을 모르더라고요.”

왜 그랬을까?”

큰아들과 큰딸이다 보니 돈을 동생에게 혼수 감을 직접 사 준 것이 아니라 부모님에게 동생 결혼 비용에 보태라고 주다 보니까 동생들은 알지 못한 것이지.”

듣고 보니 그렇겠네요.”

 

그런데 나는 친정 동생들이 결혼할 때는 축의금을 조금씩 줄여서 드리고 그 돈을 모으기 위하여 무진 계를 속초에서 교장·교감 사모님들과 하나 들고 서울에 사는 시댁 이모에게 하나 들어 그 돈으로 속초에서 피난민들이 살던 집을 한 채 장만했지요.”

 

계가 얼마짜리인데 집을 사?”

“100만 원짜리를 두 개하고 그동안 조금 모아 놓은 돈에다 결혼 때 폐물로 받은 팔찌와 반지를 팔아 집이라기보다는 창고 같은 피난민 집을 한 채 장만했답니다.”

결혼 팔찌와 반지를 팔아요?”

애 아빠가 결혼 때 양쪽 집 폐물은 모두 금으로만 하자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꿍꿍이속이 있었는데 그것을 몰랐지요.”

어찌 보면 참 현명한 생각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하며 남의 집에 사는 천호 어머니가 부러운 듯 한마디 거든다.

 

우리가 장만한 집은 대지 20평에 건평 8평의 건물로 집이라고 하기는 민망할 정도나 큰 도로변에 있는 판잣집을 매입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 집 살림 밑천이 되었잖아요.”

어떻게 했는데?”

애 아빠가 그 집을 보더니 당장 사자고 해서 사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 집에 도로변 쪽으로 창고 같은 곳이 한 칸 있었는데 그곳에 가계로 쓸 수 있게 만들었더니 집값이 두 배로 올라가게 되었지요.

그런데 그 집에서 한 해 겨울을 살았는데 겨울에 맨땅이 없어 김칫독을 묻지 못하고 부엌에다 두고 먹었더니 김치가 맛이 없잖아요.”

지금은 김치냉장고가 나와서 그렇지만 전에는 김치를 땅에다 묻지 않으면 맛이 없어 먹을 수가 없었지?” 하고 나이 드신 이사장이 나서서 한마디 거든다.

 

결국 그다음 해 봄에 집을 살 때보다 2배를 받고 팔은 다음 50m 정도 떨어진 곳에 대지 50평에 건평 18평 정도 되는 허름하게 생긴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집을 사서 이사를 갖지 뭡니까.

그리고 목수를 데려다 그 집에 거실을 만들고 처마에 합판으로 덴조 공사를 한 다음, 앞마당에다 예쁘게 정원을 만들어 놓았더니 집이 완전히 고급스러운 새로운 집이 되었답니다.

 

우리가 이 집을 살 때는 귀신이 나올 것 같은 허름하게 생긴 집이라 집주인이 집을 매매하겠다고 내놓은 지가 10년이 되어도 팔리지 않아 집값이 많이 내려가 있었는데 우리가 집을 수리해 놓아서 그런지 집이 완전히 변하여 그해 가을에 근 두 배로 내놓았는데 금방 매매가 되었지 뭡니까?

그래서 그다음은 속초 교동이라는 곳에 학교 교장 선생님들과 같은 밥술이나 먹고사는 사람들이 사는 골목에 제대로 된 한옥을 한 채 사서 살게 되었지요.”

 

어머 2년 사이에?

집을 수리하는 기술이 있었나 봐요?” 하고 한마디씩 한다.

애 아빠가 학교에 있어서 그런지 눈썰미가 있었던 모양 이 야요.” 하자

이사장이

“1960~70년대 대학을 나온 사람이라면 일반 사람들과는 무엇이 달라도 다른 사람들이지.” 한다.

 

어머,

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만 하는 거야, 아이 이야기를 한다면서 서두가 너무 길어 젖네.” 하자

그 이야기가 더 재미있는데요.

계속 들려주세요.” 하며 천호 어머니가 더 듣기를 원한다.

 

그러자 샛별이 어머니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강원도 속초라는 곳에 아이를 셋이나 두고 살다 보니 친정이나 시댁에 자주 갈 수 있는 상황이 못 되었답니다.

그때는 지금과 같이 명절을 3일씩 쉴 때도 아니고 달랑 하루 쉬었잖아요.

그러다 보니 시댁이나 친정은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 때 잠깐 다녀왔지요.

동생들 결혼식에도 둘이 같이 다니지 못하고 나 혼자 아이 셋을 데리고 직접 가는 차가 없어 처음에는 속초에서 강릉, 강릉에서 서울, 서울에서 대전, 대전에서 논산까지 버스를 타고 빙빙 돌다 보면 하루해가 꼬박 걸렸지요.

그러다 보니 애 아빠는 위에 있는 동생들 결혼식에는 한 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랍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와서 살게 되었나요?”

큰아들이다 보니 늘 부모님이 계신 가까운 곳에 살겠다고 처음에는 자기가 나온 대학이 있는 전라북도로 가려고 하더니 무슨 생각이 들었나 고향인 충청남도로 바꾸어 교사 도간교류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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