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리(수필)

도심 속의 건강 지킴이 봉서산

日陵 2025. 8. 30. 17:51

 

 

  

봉서산은 천안의 신 도심지에 자리 잡고 있는 해발 158m의 나지막한 작은 산으로 서쪽은 쌍용동과 불당동에서 북쪽으로는 노태산, 남쪽으로는 월봉산까지 뻗쳐진 산으로 봉황이 깃들어 살았던 산이라 하여 봉서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풍수지리상 이 산에 비봉귀소형의 명당이 있는데 이는 봉황이 제 집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며, 봉서산 부근에는 봉황이 울었다는 뜻을 지닌 봉명동이라는 지명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봉서산 동쪽 기슭에는 석기와 청동기 시대의 돌도끼 등이 출토되어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산이다. 그 유적지로 남쪽 산자락 끝 서당초등학교 뒤편에 선사시대의 유적지가 잘 보존되고 있다.

이런 봉서산은 천안시가 조그마할 때는 역전 뒤편에 있는 이름 없는 시골 동래 작은 산이라 30~40년 전에 천안에 살던 사람들은 그런 산이 어디에 있는데 하는 이름 없는 산이었다.

이런 산이 도시가 발달하면서 이제는 천안 신도시의 중심권으로 동쪽은 천안 역사와 구도심, 남쪽은 고속철도 역사와 아산 신도시, 서쪽은 천안시청과 종합 운동장, 북쪽은 두정동 상권이 자리 잡고 있는 등 도심의 한 복판으로 자리매김이 되었으며 고층아파트들이 즐비한 불당동, 쌍룡동, 성정동, 백석동, 두정동으로 둘러싸여 있다.

선거철만 되면 시의원이나 도의원 또는 국회의원 입후자들이 산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표를 유인하기 위하여 산 주변에 둘레길을 만든다니 산책로를 개선하고 공원화하겠다는 등 열을 올리는 산이다.

불당동 주공아파트단지에서 오르기 시작하여 쌍용동 주동 아파트 단지 마지막 봉우리까지 크고 작은 봉우리가 10여 개로 성인 걸음으로 5,000보가 조금 넘으니 왕복하면 10,000 보로 도심 속의 산책로로는 이보다 더 좋은 산이 없을 것 같다.

내가 이 산을 접하게 된 것은 지금부터 약 22년 전 우리 집이 구성동에서 쌍룡동으로 이사를 하면서부터이다. 처음에 이사를 왔을 때는 나는 시골 학교에 근무하여 주말에만 집을 찾아오는 주말 부부였기에 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다시 천안에 와서도 학교일에 쪼끼어 관심이 없었고 다만 휴일 날 집에 있기 답답하면 핵 핵 거리며 첫 봉우리나 올라가 시내를 내뎌다 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2000년 봄 교감으로 승진되어 시내 주변 학교로 발령이 났는데 그곳에 직원들 몇 분이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어렸을 적 시골에서 자라 일을 하면서 산에를 자주 다녀 산 타는 것을 그리 무서워하지 않았는데 30여 년 동안 산을 모르고 살다 직원들의 권유로 집사람과 같이 남원에 있는 지리망산을 등산하게 되었다. 그날 우리 부부는 진 땀을 흘리며 고생 좀 하였다. 그렇다고 남의 산악회에 처음 따라가 체면 없이 힘들다고 표현도 할 수 없어 속으로 고생깨나 하면서 등산을 한 것이다.

아마 마누라님도 체면이 아니었나 보다. 산에서 뜨거운 맞을 본 나는 집사람과 같이 아침 새벽이면 봉서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나를 위하여 집사람은 새벽에 오르지 못하면 아침 식사 후 오르는 습관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 오를 때는 나나 집사람 둘 다 첫 봉우리까지만 가는데도 숨이 차고 힘들어 헉헉 대면서 쉬기도 하면서 올라 갇는데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되었을 때는 산 중간에 있는 약수터까지 가서 약수도 떠오는 지구력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 후로 집사람은 산악회에 가입하여 전국 곳곳의 명산들을 등산하였으며 나는 바쁘다 핑계로 꾸준히 산책하는 걷을 실천하지 못하다 보니 집사람과 길을 걸으면 매번 뒤처지고 천천히 가라고 짜증을 부리는 사람으로 변하였다. 

이와 같이 봉서산은 집사람에게 힘을 부러너 주는 스승이 되었다. 아파트 몇 계단만 오르도 힘들다고 쩔쩔매던 사람이 허벅지와 장딴지가 나보다도 굵으며 물건을 드는데도 나보다 더 힘차게 들어 올리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봉서산이 만들어 준 것이 않인가?

처음 우리가 봉서산을 다닐 때는 길도 조그마했는데 일 년이 가고 이년이 가면서 산책로 길이 점점 넗어지자 천안시에서는 새벽부터 오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능선에 가로등을 설치하여 주었다. 그러다 주변에 아파트가 점점 늘어나고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작년에는 산책로 전체에 마로 엮은 두루마리(이름을 잘 모름)를 깔아 줘 비가 와도 빠지지 않고 눈이 와도 미끄러지지 않도록 공사를 했으며 안내판 도새로 만들어 주었다.

산 주변이 모두 고층 아파트 주거지라 이쪽저쪽 산책로는 골짝 골짝 없는 곳이 없으며 아마 산책로가 거미줄 같이 엮어진 것 같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다닌다는 것이 않인가?

내가 처음 오를 때 여름 어느 새벽에 날이 미쳐 새기 전 계단을 오르는 데 고양이 한 마리가 계단을 막고 나를 노려보고 있는데 아무 장비도 없는 나는 고양이가 해코지할까 봐 뒤로 돌아 내려온 적도 있으며 어느 날인가는 열심히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안개로 인해 산책로를 착각하여 한 능선 앞에서 다른 골짜기로 내려가다 이상하여 둘러보니 산소만 보이고 길이 달라 당황도 하였으며, 아침 일찍 부지런을 떨다 보면 산토 기도 만나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장끼들의 울음소리 나 뻐꾸기 울음 소리 서쪽새 울움 소리를 들으며 산을 걷는 순간의 행복감은 걷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일 것이다.

2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 산책로에서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 인사도 제법 했는데 그중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분은 나이도 지긋하게 들은 분이 만나는 사람마다 "복 받으세요"하는 분이 있었다. 아마 그분이 "복 받으세요" 하는 말을 하루아침이면 적어도 몇십 번 내지 몇 백 번 되리라. 그 말을 할 때마다 그분은 엔도르핀을 만들어 내는 엔도르핀 생산 공장 이러니--- 

나는 한 동안 뜸하다 퇴직을 하고 열심히 새벽 산책을 하다 농사에 재미 붙여 산책을 등한이 하다 허리를 다친 후 수술 후 다시 걷는 것을 내 하루 일과 중 첫 번째로 정하였다. 그렇게 한지 이년 반이 지난 지금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걷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 사람이 되었으며 해외여행을 가서도 새벽에 호텔 주변을 돌고 돌아 만보기에 만보를 채우는 괴벽이 나타났으며 계절에 따라 걷는 곳과 시간은 조금씩 차이가 나나 봉서산이 가장 오래된 내 산책로요 자연의 맞을 주나 원래 사람이 많아 요즘은 하천 쪽으로 피하는 산책로이다.

봉서산을 걸으면서 스쳐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음미하면서 무아에 걷는 그 걸음은 분명 나의 늙음을 멈춰주는 엔도르핀으로 생성되고 있으리라.

 

***글을 작성하다 쉬고 쉬고 했더니 무슨 의미를 나타 내려고 했는지 나도 모르겠음. 더 늙으면 다시 정리해야지?

 

2016.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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