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리(수필)

횡설수설2020. 01. 09일. 행운이 가득했던 나의 하루

日陵 2025. 9. 23. 07:07

 

술 한 잔에 취기가 오르는 겨울밤이다.

 

책상에 컴퓨터를 켜 놓고 세상 돌아라 가는 것을 검색하다 문득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게 된다.

오늘 아침도 예나 다름없이 새벽 4시에 새벽 산책을 하고 돌아 왔다. 아침을 먹고 나니 마나님은 자기 일을 나가고 아들은 주간보호세터에 가고 나니 집안이 조용하다. 아침 추위에 늙은이가 두 시간이 넘게 헤매고 다녔으니 온몸이 노곤 하다. 생각 같아서는 침대에 조금 눕고 싶었지만 누우면 한 시간을 자는 습성이 있어 참기로 한다. 낮잠을 자고 나면 몸은 가벼워 좋은데 저녁이 문제가 생긴다.

 

이제는 늙어서 그런지 저녁잠을 설치는 것이 다반사다. 잠을 두 시간 넘게 자지 못하고 뒤척인다. 깃 것 자 봐야 서너 시간인데 어느 날은 새벽 2시면 잠이 다 달아나 애를 먹인다. 특히 낮잠을 잔 날은 더 심한 것 같아 3일 전부터는 낮잠을 일체 자지 않기로 결심하고 피곤한 몸을 책상 앞에 않자 지난겨울에 쓰다 중단한 단편소설 아들 1(학춤)를 정리하며 피로를 이겨보고 있다.

 

10시 경 마나님이 오전 일과를 마치고 들어온다. 수영장으로 간 줄 알았더니 무슨 할 일이 있나 집으로 온 것이다. 나는 모른 체 책상에 앉아 있는데 11시경 밭에 도라지를 캐러 가지고 한다.

 

금년 겨울 날씨는 어찌 되었는지 엇 그제가 小寒이었는 데 겨울답지 않게 며칠간 비가 왔다. 나는 일기예보를 검색해 보니 오늘 낮 기온이 영상으로 나와 지난번에 가지고 오지 못한 하우스 안에 있는 고추장 단지가 생각나 옷을 가라 입고 밭으로 나갔다밭에 가보니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불었는지 마늘밭 덮개가 다 날아갔다. 지난번에도 날아가 벽돌을 주어다 단단히 고정시켰는데도 또 뒤집어 놓은 것이다. 나는 정신없이 고랑의 흙으로 바람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며 다시 덮어놓는데 마나님은 한가하게 마늘밭고랑에 자라고 있는 냉이 캐기에 여념이 없다. 내가 성질을 부리자 냉이 캐는 것을 멈추고 도라지를 함께 캐는데 허리가 아프다. 그리고 12시가 조금 넘었는데 뱃속에 거지가 들어있나 배가 고파왔다. 몇 뿌리 캐고 가자는 내 말을 마나님은 못 들은 체하고 캐던 고량을 마저 캐라는 성화에 정신없이 다 캐 주고 하우스에 저장한 무를 하나 꺼 네, 깍아서 먹는데 그보다 더 맛있는 것이 없을 듯했다..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기 전 핸드폰을 열어보니 선거철이 돌아오는지 문자가 많이 들어와 있다. 필요 없는 문자를 하나씩 지워 나가다 보니 반가운 문자도 들어 와 있다. 다음 주 월요일 홍심회 모임 안내와 이번 주 일요일에 실시되는 해파랑길 3코스 트레킹 좌석번호 안내도와 있다. 그리고 보기가 망설여지는 문자가 하나 눈에 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다소 늦은 새해 인사지만, 올해도 사진 속 모습처럼 늘 건강하시고 가족 모두 매일매일이 행복이며 기쁨이기를 기원합니다.~^^``’라는.~^^``’  문자에 이어

뜬 급 없이 급작스레 연락받고 놀라셨지요?^^“ 저는, 천남 중학교 17회 졸업생 최 00이라고 합니다. 선생님 기억 속엔 없겠지만요.^^, 다름이 아니고 선생님만 괜찮으시다면 선생님 편하신 시간에 전화연락을 드리고 싶은데 가능할까요?^^라는 문자가 들어와 있다.

 

17회면 어떤 아이들이었을까? 문자 내용대로 17회 자체가 몇 년도 졸업생이며 어떤 아이들이 학교를 다녔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마음이 흔들린다. 문자를 남겨 줄까? 아니면 모른 체할까??

 

어느 날부터인가 제자들이라고 하는 연락에도 신경이 쓰였다. 사회가 하도 빠르게 변하다 보니 보이스핑에 대한 불안감도 있고 아이들을 가르친 지 오래되다 보니 알 수도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옛날에는 제자들의 전화를 받으면 자랑스럽게 자랑을 했는데 이제는 그런 세상이 지나간 모양이다. 사회 인식이 요즘은 선생다운 선생도 없고 학생다운 학생도 없다는 풍조로 변했고 선생님이란 분들이 師道라는 길보다 직업인으로 변한 세상이 된 것이다.

 

우선 밥부터 먹고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천남 중학교 17회면 어떤 아이들이었을까? 천남 중학교는 천안의 변두리에 있는 자그마한 학교지만 동창회 조직이 잘되어 있어 졸업한 지, 30년이 되는 해는 꼭 옛 스승님들을 모시고 동창회를 한다면 4년 전에 초대를 받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리고 그다음 해 또 초대를 하는데 마침 동유럽 해외여행과 맞물려 참석하지 못했는데 그 아이들을 기준으로 17회 학생들을 추론해 보니 이 학생들이 금년이 졸업 30주년이 되는 해이었다.속으로 웃으며 이 아이들에게 남아있는 나의 추억은 무엇이 있는지 회상해 보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천남중학교 17회 졸업생의 기억은 이 애들이 입학할 때 1반 담임을 하다 5월경 담임을 그만두고 학생과 과장 일에만 몰두했는데, 담임을 하면서 어느 한 학생이 초등학교 때부터 가출과 도벽하는 버릇이 심하다 하여 부모님 허락을 얻고 단단히 혼낸 적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해 그 학교를 떠나고 싶은 데 가지 말라는 학교장의 말을 듣지 않자 미움을 밭아 학생과장 자리를 내놓고 윤리과 일을 보면서 2학년 1반 담임을 한 적이 있다.

 

2학년 1반 담임을 맡게 된 것은 당시 교감 선생님이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사회과 선생님으로 마음속에 오래오래 남아있는 인자한 선생님이었다.아마 그분은 2학년 학생들의 수학여행을 추진할 선생님으로 나를 지목한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교직생활 11년 만에 처음으로 학생들 수학여행을 인솔한 것이다. 다시 말해 경주를 처음 가 본 것이다. 다른 분들은 교직에 나오면 2~3년 안에 수학여행 인솔을 해 보는데 나는 중학교나 고등학교 모두 3학년을 주로 했기 때문에 기회가 주어지지 안 했다.그 해는 수학여행 인솔 경험이 없는 나에게 2번이나 기화가 주어 젖다. 그해 9월 천안중학교로 발령이 나 2학년 6반 담임을 맡았는데 9 7일경 수학여행이 실시되어 다시 경주를 가게 되었는데 학교장이 나를 믿고 새로 전출 온 사람에게 총인솔을 맡겨 혼이 난 적이 있다. 그러다 보니 한 해에 봄, 가을 두 번이나 학생들을 인솔하고 경주를 다녀온 것이다. 그 해가 바로 ‘88 서울올림픽’을 하 던 해로 내가 대학원을 졸업하기도 했던 추억이 있는 해였다.

또 하나 영원히 잃지 못하는 추억이 하나 남아 있다. 내가 2학년 1반 담임을 하는데 그 학급에 1학년에 가출 습관이 있다는 학생이 다시 내 반이 된 것이다. 1학년 때 내가 맡고 있을 때는 다시 결석이 없었는데 담임이 젊은 여선생님으로 바뀌고 나서 다시 가출 습성이 나타난 모양이다. 2학년에 올라와서도 그 습성을 버리지 못하였다. 그날이 6 25일 토요일로 기억된다. 24일 날 결석을 하여 결석을 절대 용납하지 않던 나는 점신 시간에 친구들을 집에 보내 데리고 오라고 했는데 그날 마침 오후에 대학원 논문 지도를 받게 되어 있어 조퇴를 하고 서울을 가게 되었다. 부지런히 점심을 먹고 시내버스를 타고 천안터미널을 가는데 버스 창밖으로 논둑길에 한 학생은 도망가고 두 학생이 쫓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어이가 없었다. 아마 학교 앞까지 왔다 도망가는 모양이다. 나는 터미널에 와서 공동전화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젊은 체육 선생님에게 그 아이 집을 방문하여 학교에 데리고 오라고 부탁을 했다.

그 다음날 아침 출근하니 체육선생님 이야기가 그 학생이 학교를 안 다닌다고 하여 오늘 학교에 나와서 담임선생님에게 이야기하고 다니지 말라고 하여 나오기로 약속되어 있단다. 교실에 들어가 보니 학교에 나와 있었다. 나는 반갑게 맞아주며 4교시 째 수업이 없어 상담실에서 상담을 하자고 약속을 잡았다.

상담실에서 상담을 해 보니 그는 절대로 학교를 다니지 않겠단다. 나는 그와 약속을 했다. 학교를 다니는 것은 네가 어른이 되어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인내력을 키워 주고자 하는 것이니 운동장에 나가 오리걸음 50바퀴를 돌면 학교를 안 다녀도 된다고 하자 서슴없이 하겠다고 달라 든다.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운동장으로 나갔다. 우리 학교 운동장은 원이 200m가 되는 시골 학교지만 커다란 운동장이었다. 내 생각은 많이 돌아야 2바퀴 돌면 포기할 줄 알았다. 그런데 완전 예상이 빗나갔다. 한 바퀴 두 바퀴 5바퀴 끝이 없다. 하지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폭염 속의 운동장을 학생은 오리걸음을, 선생은 뒷짐을 끼고 뒤를 따라간다.만약 학생이 멈추면 지는 것으로 했기 때문에 그는 조금도 멈추지 않고 뒤뚱뒤뚱 오리걸음을 걷는다. 학생의 등에서는 땀이 흘러 옷이 젖었다가 말랐다 한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럭비 선수생활을 하면서 오리걸음을 걸어 봤는데 얼마나 힘들었던가를 생각하며 걸으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 한다. 혹시 이녀서 무릎이 상하지 않을까? 하면서도 이 녀석 끈기가 얼마나 센지 알아보자며 돌고 또 돈다. 그 사이 선생님과 학생들은 다 퇴근과 하교를 했다. 나는 반장에게 종례사항을 전달하고 학생 꽁무니를 따라간다. 돌다 보니40바퀴가 넘어간다. 겁이 난다. 결국 나는 45바퀴를 돌면서 기압 주는 것을 포기하고 운동장 가에 있는 나무 그늘 아래로 가서,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3학년 학생을 불러 그를 일으켜 세우고 긴 의자에 뉘어 다리를 주무르도록 했다. 독한 선생과 독한 학생이 만나 선생이 항복하는 순간이다.

나는 학생을 시켜 교무실 내 책상에 있는 우유를 가져오라 하여 주고 그에게 설득을 한다.

명수야 네가 이겼다. 너는 그 정도 인내력이면 사회에 나가서 혼자 살 수도 있겠다. 학교를 다니고 안 다니고는 네 마음대로 하 거라, 그런데 내 생각은 네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체육 고등학교에 가서 레슬링 선수가 되면 멋진 선수가 될 것 같은데 하자 그는

학교 안 다녀요.” 한다. 나는

집에 가서 잘 생각해 보고 다니고 싶으면 월요일에 학교에 오너라”하고 택시를 불러 태워 보냈다.

월요일 날 그는 학교에 나타나지 안 했다.이 아이는 가정에서 부모님이 통제할 수 없는 불우 가정이었다. 부모님들은 나에게 학생을 위임하여 퇴학을 시키려면 마음대로 하라고 도장을 맡겨 논 상태였다.

월요일 점심시간에 갑자기 교감 선생님이

김 과장 전화받아 봐. 천안 경찰서라네 하면서 전화를 넘긴다. 내 예감은 요 녀석이 문제를 일으켜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온다. 전화를 받아 보니 이 녀석이 남의 집 담을 넘어갔다 주민의 신고로 붙잡혀 지서에 와 있단다. 아마 토요일 날 받은 기압으로 도망치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아이를 인솔해 가라는 경찰에게 한마디로 거절했다..

그 아이는 지난 토요일까지는 내 반 학생이었는데 지금은 우리 반 학생이 안입니다 하자 경찰은 쾌나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아이를 인솔해 가 달란다. 전화 내용을 듣고 있던 교감 선생님은 학생을 인솔해 오라고 했지만 내가 거절하자 교장 선생님과 상의해서 처리하란다. 나는 교장실에 들어가 사실대로 이야기하자 평소 내 행동에 불만을 가진 교장은 근엄한 자세로 학생을 데려 오란다.

자전거를 빌 여 타고 지서에 가 보니 경찰 앞에 학생과 그의 어머니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경찰을 본체만체하고 학생을 보며

너 토요일 날 분명 학교 안 다닌다고 했자나.그런데 왜 나를 오라 가라 하니?” 하자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애원한다.나는 냉정한 자세를 보여 주며 거절하면서 속으로 이 번 기회에 이 녀석 버릇을 고쳐 보겠다는 생각을 한다. 학생과 엄마를 다구 치다 경찰에게 조용한 곳으로 안내해 달라니 그는 숙직실로 안내한다.나는 그 아이와 엄마에게 단단히 다짐을 받고 학교로 데리고 왔다. 이 사건이 있은 후 그 아이는 지각도 없이 학교에 잘 나 오며 나에게 체육 고등학교에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해서 알았다며 학교에 열심히 다니라고 한 적이 있다. 나는 속으로 대학원에 후배로 다니며 내 대학의 후배인 체육 선생이 전북체육고등학교에서 레슬링을 지도하고 있어 그쪽으로 추천해 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해 9월 천안중학교로 발령이 나 떠나게 되자 이 학생은 9 1일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으며 9 44일 자로 제적처리 되었단다.이 소식을 들은 나는 속으로 교사들 사이에도 생각이 서로 많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기 수의 학생들이 내 큰딸과 같은 학년이라 여학생들을 더 귀여워한 것으로 기억된다.그리고 학생들도 무척 따라 줬다. 이 아이들과 헤어질 때 8 31일 날 6교시 수업을 맡치고 강당에서 작별 인사를 하는데 그 인사말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내가 한 말은 3가지를 당부했다.

첫째, 心洪宇器를 가져라! 며 여러분들 마음속에 우주와 같은 큰 꿈을 가지라고 했으며

둘째, 克己를 가져라! 즉 자신의 욕망을 이겨나가라, 놀고 싶은 욕심, 자고 싶은 욕심을 이겨 열심히 공부 하 거라.

셋째, 忠恕를 생활화 하 거라, 충서란 논어에 나오는 말로 어떤 행동을 할 때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행동한다면 누구로부터나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말을 해 줬다.

인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교장실에 들 여 인사를 하려 하는데 교장 선생님이 자리에 앉기를 권하며 하시는 말씀이

김 과장은 교장을 하면 잘할 거야, 인사말을 많이 준비했네. 하며 잘 가라고 인사를 한다. 이런 추억 속에 있는 데 학생들의 이름은 하나도 기억이 없다.

용기를 내어 문자에 찍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 본다. 그랬더니 예쁜 목소리로

선생님 죄송해요. 지금 제가 진료를 받는 중이라 이따가 전화할게요”해서 전화를 끊고 오후 산책을 나갔다. 산책을 하면서 궁금증이 더욱 듣다. 3학년 때 가르친 아이도 아니고 담임도 안 했는데 도대체 어떤 학생이었을까? 전화하겠다는 이유가 뭘까? 생각하는데 혹시 이 녀석들이 졸업 30주년이라 그 행사를 하는데 옛 선생님들의 소식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때 같이 근무한 선생님들의 기억을 더듬어 보니 머릿속에서 까마득하게 사라져 있었다. 얼마를 생각하니 3분의 2는 생각을 해 냈다. 그러던 중 그의 목소리가 들여온다.

그와 대화하는 동안 그들이 학교 다니던 것들을 하나 둘 기억해 낸 것이다. 1987년도 입학한 학생들로 내가 사회를 1년 반 가르친 학생이란 것과 특히 3반과 4반 여학생들의 착했던 모습과 귀여웠던 모습의 기억을 되찾은 것이다.

나는 그가 천안에 살면서 동창회 모임 때문에 전화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는 지금 인천에 살고 있으며 고향 부모님을 만나려 천안에 내려올 때 식사 한 번 같이 하잔다. 나는 대답은 하지 않고 나의 생활 모습을 보려면 인터넷에서 꿈결 같은 인생살이라는 블로그를 검색하면 내 인생 모두가 들어 있다며 전화를 끊는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그와의 전화 여운이 한 참 동안 남아 있다. 너무나 행복했던 시간이란 생각이 든다. 그때가 언제인데 내가 담임도 하지 않았던 제자가 나를 찾아 주다니, 2년 전에도 한 여학생이 전화를 걸어와 행복에 젖어 있던 적이 있었다. 그 학생은 내가 수업시간에 들여 준 좌우명을 잊을 수 없어 기억을 하고 있었단다. 나는 그와 블로그를 통해 대화를 주고받으며 내가 쓴 나의 삶 이야기를 보내 준 적이 있다. 그리고 그가 한 번 만나기를 원했으나 부담스러워 거절하고 연락을 끊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저녁은 같은 아파트 옆 동에 사는 둘째 사위가 자기 친구 동생이 참치 집을 하는데 오늘 참치가 좋은 것이 들어온다며 즈 손아래 동서와 나를 초대했다.사위 두 녀석과 싱싱한 참치회로 술을 마시는데 그 맛 一味중의 一味였다. 가볍게 한 잔만 하고 온다던 나는 거나하게 취하여 집에 들어와 생각하니 오늘 하루가 너무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어 일기를 쓰기로 한 것이다.

30년 전에 가르친 제자의 전화 목소리와 수시로 캠핑이나 행사 및 여행 때 자식들과 술자리를 곧 잘했지만,제 놈들이 나를 특별히 음식점으로 불러 술대접을 해 준다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술값은 둘째 녀석이 계산했다는데 늙은이 고집으로 환불하게 하고 내가 지불했다.그리고 참치집 사장이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그 학교의 3학년을 가르치던 선생님으로 가르치지는 안 했지만 제자는 제자인 셈이었다.

오늘 하루를 돌이켜 보니 하늘이 나에게 준 특별한 날이었던 모양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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