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리(수필)

나만 간직한 행복

日陵 2025. 9. 22. 18:03

 

오늘도 하루는 시작된다.

 

새벽 네 시만 되면 여지없이 일어나 안방에서 서재로 건너가 처음 하는 일이 오른쪽 눈에 엘라좁이란 안약을 투입하는 것이다. ‘엘라좁은 안압 조절 약으로 투입하기 시작한 지 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7년 전 천안 농협에서 조합원들에게 베풀어 준 건강검진에서 안압이 높다고 나와 의사 권유로 눈 검사를 한 결과 생각지도 못했던 녹내장이란 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안압을 낮추어 녹내장이 더 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 엘라좁을 투입하고 자기 전 양쪽 눈에 타플로탄이란 약을 투입한다. 죽을 때까지 내가 해야만 하는 눈 관리다.

 

그러고 나면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간다. 새벽에는 불당동 천변을 8바퀴 돌고 집에 들어오면 충청남도체육회에서 실시하는 함께하는 행복 걷기 헬스-온 앱에 만 이천 보가 조금 넘게 걸은 숫자가 찍힌다. 그리고 오후는 가을에서 봄까지 장재천 변을, 여름은 봉서산 능선을 매일 만여 보 넘게 걷는다. 이렇게 열심히 걷는 것도 이유가 있다. 6년 전 척추 협착증과 디스크 파열 수술을 받고 재발 방지를 위하여 허리 근육을 강화하도록 의사의 권유로 하루 만보 이상 걷기를 시작했는데 죽을 때까지 매일 실천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이렇게 시작한 만보 이상 걷기가 일 년이 지나자 걷는데 자신이 생겨 지리산을 일 년이면 두세 번 이 골짝 저 골짝 돌아가며 오르게 되었고, 3년 전은 큰딸과 둘이 고희(古稀) 기념으로(古稀) 네팔의 히말라야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라는 4,130m까지 도전하여 큰 부담 없이 다녀오기도 했다. 이에 재미를 붙여 처음에 만보로 시작한 걷기가 지금은 매일 이삼 만보를 걷는다. 죽을 때까지 1억 보를 걷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실천하고 있는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눈이 오나 비가 와도 그치지 않고 심지어 해외여행을 가서도 일행들이 자는 새벽에 혼자 나와 호텔 주변이라도 뱅글뱅글 도는 아집을 부리다가 터키에서 굶주린 들개한테 혼쭐이 난 적도 있다.

 

아침 운동이 끝나고 집에 들어오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 늦둥이 아들 녀석을 깨우는 일이다. 이 녀석은 나이가 29살이나 되었는데 지금도 네댓 살처럼 살고 있다. 다운증후군이란 염색체 이상으로 태어났는데 늦둥이 아들이라 그런지 다운증후군 중에서도 지능이 가장 낮아 세 살이 되기 전부터 특수교육을 했으며, 특수학교에서 전문과정까지 졸업했는데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대소변을 가릴 줄 안다는 것뿐이다. 이 정도만 해도 다른 병이 없는 건강한 내 아들이 너무나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이 아이가 태어난 지 6개월쯤 되었을 때 집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며 울면서 말하는 소리에 어안이 벙벙하여 제대로 위로도 못 하고 전화를 끊고 인근 대학 도서관을 찾아가 교육심리학 심리학이란 책을 모두 뒤져 다운증후군에 대한 내용을 읽었을 때는 눈앞이 깜깜했다. 다운증후군이란 염색체 이상으로 학교 다닐 때 돌연변이라고 배운 것이란 것을 알았고 종류가 다양하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지능이 현저하게 낮거나 염색체 종류에 따라 괴물과 같은 형체를 가지기도 하며 다양한 합병증에 수명이 짧다는 절망적인 내용만 적혀 있었다. 희망적인 것은 어느 한 책이 교육을 잘하면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명색이 선생인데 내 아이 하나 제대로 못 가르칠까? 하는 마음 다짐을 하며 자신을 위로했다.

 

그러나 이 아이가 태어난 후로 우리 집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아이를 위하여 집사람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살았다. 사람들이 아이에게 좋다고 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다 해 보았지만, 변화는 없었다. 아이의 성장 과정이 모든 면에서 다른 집 아이들보다 현저하게 늦게 나타났다. 매일 매일 마음 졸이며 아이에게 매달려 살다 보니 한동안 가족끼리도 서먹해지고 친구나 친척 및 부모 형제와도 점점 멀어지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서울에서 다운증후군 모임이란 부모들 모임에서 다운증후군 부모를 위한 교육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참석했다. 그때 어느 특수 교사가 이 아이들은 지능이 현저하게 낮아 대부분이 50 이하라고 말을 한다. 나는 손을 들고

 

내가 중등교사로서 17년간 교직 생활을 했는데 50 이하라는 지능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들은 적도 없는데 50 이하인 사람 행동은 어떤 것이며 교육이 왜 필요합니까?”라고 질문하자 이 교사는

 

모래를 아무리 갈고닦는다고 황금이 됩니까?”라고 반문한다. 그때 문 듯 깨달음이 있었다. 학교에서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시켜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학생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 생활 속에서도 직장에서 열심히 근무했다. 그러다 정년퇴직 후 집에 있어 보니 그동안 집사람이 혼자서 이 아이를 돌보니라 얼마나 고생했는가를 깨닫게 되어 나머지 내 인생은 이 아이의 돌보미로 살다 가기로 다짐한 것이다.

 

아침 운동에서 돌아오면 태어날 때부터 고집이 세다는 다운증후군 아이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살며시 그의 방으로 들어가 반응을 살피며

아들 사랑해.” 하며 양팔을 내밀면 그도 양팔을 내밀며

사랑해 한다. 둘이 서로 등을 두들겨 주고 노래를 좋아하는 아들에게

노래 틀어 줄까?” 하면 저도 따라서

노래 틀어 줄까?” 한다. 지능이 낮아 대화가 되지 않고 내가 한 말을 앵무새 같이 따라서 하는 것이 내 아들이다. 노래를 좋아하는 아들에게 트로트를 틀어 주고 우유를 한 컵 가져다준 다음 노랫소리에 기분이 좋아지면 아침 식탁으로 데리고 나와 밥을 먹인다. 그리고 양치질을 해 주고 세수를 시킨 다음 옷을 입혀 주간 보호센터에 데리고 간다.

 

주간 보호센터는 내가 직접 데려다준다. 지난해부터 장애인 지원사 자격을 취득하여 내 아이가 다니는 주간 보호센터에 아들 또래인 다운증후군인 사람을 아침저녁으로 태워다 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3월부터 11월까지는 아들을 주간 보호센터에 데려다준 다음 농장으로 간다.

 

내 농장은 800여 평으로 2월 말 완두콩 파종을 시작으로 11월 말 검정콩 수확이 끝날 때까지 농장에서 일한다. 밭에서 재배하는 작물은 거의 다 재배한다. 각종 나물과 채소 및 잡곡류가 30여 종류가 된다. 그중 남들이 별로 재배하지 않는 방풍나물이나 아스파라거스도 있으며 도라지 더덕 등 없는 것이 없다. 수수나 콩 종류는 일 년 내내 먹는 우리 집 주 곡식이다.

 

10시경 농장에 도착한 나는 많은 시간 동안 일을 하지 않는다. 원래 교원 생활을 한 사람이다 보니 일에 몸이 단련되지 않아 3시간 정도 지나면 힘이 들어 더 버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손수 점심을 챙겨 먹고 30분 정도 낮잠을 잔다. 그리고 다시 오후 산책하러 나가 2시간 가까이 산책을 하고 나서 다시 주간 보호센터에 가, 내가 맡은 사람을 집에 데려다주고 아들을 데리고 와 깨끗이 씻어 준다. 그리고 아침과 점심 먹은 설거지를 하고 저녁쌀을 씻어 놓는 것까지 내가 하는 일이다.

 

그러고 나면 기다리던 집사람이 퇴근해 온다. 내가 직장에서 정년퇴직하자 집사람이 자기도 직장 한 번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라며 장애인 지원사 자격을 취득하여 일을 시작한 지 벌써 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처음에는 반대하다 지쳐 포기했는데 이제는 나도 그녀가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두 늙은이가 아들 덕분에 늙어서 행운의 일자리를 얻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루 일을 마치면 세 가족이 즐겁게 저녁을 먹고 내 방에 들어와 컴퓨터 앞에 않는다. 컴퓨터에서 뉴스를 검색하여 세상 돌아가는 것을 훑어보고 내 블로그에 들어가 옛 추억을 회상해 보기도 하고, 낮에 걸으면서 떠올랐던 좋은 글귀가 있으면 블로그에 작성하여 남기기도 한다.

 

내 블로그는 Daum 블로그를 사용하는데 퇴직 후 한동안 추억을 먹고 사는 노인네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닉네임도 시골 샘이라 했으나 지난여름 해외에 사는 큰딸 녀석이 내 집에서 머물다 가면서 내가 하는 말을 잔소리같이 여겨 앞으로는 가능한 말을 하지 말자는 의미에서 낙조 인생이라고 바꿔다. 낙조는 강렬함은 없어도 화려한 저녁노을 풍경으로 한 세상 살은 노인네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름답게 살다 조용히 사라지자는 의미로 낙조 인생이라 한 것이다. 그리고 블로그 이름도 꿈결 같은 인생살이로 바꿔 관리하고 있다.

 

이 불로그는 8개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다. 하루와 일 년을 되돌아보는 日記  年記, 내 마음을 표현한 횡설수설, 옛 추억을 정리하는 추억 파노라마, 삶을 다시 생활, 산행, 여행으로 분류하고 랍시고 넋두리란 항목을 두었으며, 최근에 글을 써보자며 단편 소설이란 카테고리도 만들어 봤다. 그러다 보니 이 블로그 속에 퇴직하고 9년간 살아온 내 모습의 변화가 그대로 담겨 있다. 이처럼 관리해 온 블로그 쪽 수가 총 256편이나 된다. 처음 개설했을 때 어설퍼 보였는데 이제는 제법 그럴듯한 블로그로 변했으며 내 노년 생활의 행복이 그대로 녹아 있다.

 

요즘 나는 치매 예방 겸 행복을 위하여 一善, 十笑, 百書, 千讀, 萬步를 실천하고 있다. 그 뜻은 일선은 하루에 한 가지 이상 좋은 일을 하고, 십소는 하루에 열 번 웃고, 백서는 하루에 백자를 쓰고, 천 독은 하루에 천자를 읽으며, 만보는 하루에 만보를 걷자는 뜻이다.

 

이런 , , , , 을 내 생활에 비교해 보니 마나님과 아이를 보살피고자 하는 내 마음이 일선은 실천하는 것 같고, 매일 컴퓨터 앞에 않자 블로그에 글을 쓴다고 장난을 치고, 뉴스 기사를 잃으니 백서와 천 독도 실천한다는 느낌이 들며, 하루 이 만보 이상 걷기를 생활화하고 있으니 만보도 실천하는 데 십소가 제대로 되는 것 같지가 않다. 친구들과 어울리면 웃는 일도 많을 것 같은데 가정에 충실하려고 만나는 것을 가능한 줄이며 살아왔다. 그리고 혼자 산책이나 농장에서 일하며 생활하다 보니 웃을 일은 가족들 사이뿐인데 그리 많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길을 걸으면서 사람을 만나면 만날 때마다 마음속으로 웃기로 했으나 자꾸 잃어버려 실천하기가 쉽지 않아 다시 생각해 낸 것이 내 아들이 간직하고 있는 천사 웃음을 나에게 보여 줄 때 나도 같이 웃기로 한 것이다.

 

이처럼 나의 하루는 쳇바퀴 돌 듯 매일 반복되는 생활이지만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가정을 위하여 헌신하는 집사람 모습과 언제나 천사 웃음을 짓는 아들을 바라보며 사는 내 인생보다 더 아름다운 황혼 인생은 없을 것 같다는 행복감에 오늘 하루도 흐뭇한 웃음을 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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