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리(수필)

무관심

日陵 2025. 9. 22. 17:57

 

    무관심(無關心)이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끌리는 마음이나 흥미가 없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간혹 무관심이 최고 관심거리가 되는 경우가 있다. 다시 말해 내가 어떤 사람에 대하여 지나치게 관심이 있는데 상대방에서 반응이 없을 때 반응을 보이게 하기 위하여 무관심하게 보이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사회라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최대로 보장하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동해야 진정한 자유가 되는 것이지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하는 행동은 자유로운 행동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면 다른 사람도 그와 같은 행동을 하면 내가 피해를 보기 때문에 서로 상충하여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진정한 자유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을 뜻한다. 즉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은 자유를 넘어 하나의 방종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유를 넘어 방종생활을 할 때가 나타난다. 이것을 고치기 위하여 개인의 행동을 규제하는 각종 규범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규범을 너무 엄격하게 지키다 보면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위축되어 마음대로 살 수 없는 경우도 나타난다. 그래서 적적한 범위 내에서 규범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사회이다. 이런 때 엄격한 규범을 적용하기보다는 관심이나 무관심을 이용하여 해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학교에서 근무할 때 내가 맡은 학급 학생을 지도하면서 간혹 무관 심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어느 학생이 남에게 보이기 위하여 관심법을 사용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문제행동을 계속할 경우 문제행동을 고쳐주기 위하여 다각적으로 노력해도 고쳐지지 않는 학생이 간혹 나타난다. 이럴 때 그 학생에 대하여 관심이 없는 것 같은 행동을 하여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런 무관심이 너무 과하거나 장기간 계속되면 따돌림이 될 수도 있어 적절하게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이때 사용되는 무관심은 최고의 관심이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사용해야 한다.

 

요즘 젊은 세대의 가정에서는 대부분 자녀를 하나둘씩 두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내 자녀에 대한 관심이 너무 지나 처 아이들의 습관이나 버릇이 나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아이들은 학교에서 부모님 관심이 지나쳐 선생님이 아이 교육을 하는데 오히려 방해를 받는 경우가 있다. 부모님이 너무나 아이를 오냐오냐 키우다 보니 아이의 개성을 키우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도가 넘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학생에 대하여 선생님들은 다른 학생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하는데 잘 고쳐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고 잘못하면 부모로부터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어 다른 학생에게 피해도 주지 않고 부모에게 오해도 받지 않으면서 학생이 스스로 깨닫도록 지도할 때 간혹 무관 심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정에서 자녀들 교육에도 정도에 맞는 무관심은 관심보다 훨씬 효과가 있을 때가 있다. 즉 아이들이 하는 행동을 일일이 간섭하는 것보다 자율적으로 하게 놔두면서 잘못된 점만 바로 잡아주면 된다는 것이다. 옛말에 마당 청소를 하려고 빗자루를 잡는데 부모님이 마당 청소를 하라면 빗자루를 내던지고 나가버린다.”는 것과 같이 잔소리를 할 때가 있고 해서는 안 될 때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내가 늙은이가 되어서 그런지 말이 많아졌나 식구도 그렇고 아이들도 내 이야기에 시큰둥하니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혹시 잘못된 말을 했나 되짚어 봐도 당연한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알 수가 없다. 이것이 한 번 두 번 싸이다 보니 나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때 생각한 것이 혼자 외로워질 줄은 모르지만 무관 심법을 사용해 보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이 오건 말건 집사람이 무어라 하던 관심을 보이지 않고 소 닭 쳐다보는 식으로 살기로 했다.

 

70 평생 살면서 다양한 경험으로 다져진 내공을 자식들이나 손자 녀석들에게 전수하고 싶은데 하나의 꼰대로 취급해 버리는 사회 풍조에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마음에 위안으로 삼으며 고요하고 아름다운 빛을 발하며 조용히 석양으로 살아지는 낙조처럼 빙그레 웃으며 살아지는 것이 행복한 노인네 삶인 모양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관 심법이 아니라 무관심으로 살다 가는 것이 옳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의 속앓이를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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