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리(수필)

"낙조" 인생

日陵 2025. 9. 22. 07:15

 

  

요즘 날씨가 예년과 달리 음산하고 추위가 오싹오싹 온몸에 기어드는 것 같다. 더구나 나잇살이나 먹고 보니 아무리 단풍이 아름다워도 시 들어가는 가을도 싫은데 낙엽도 다진 추운 겨울은 더군다나 싫다. 그런 데다 늙은이 더 늙으라고 그런지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내 생각과 다르다. 칠십 평생 산 것이 잘못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직도 나에게 욕망이 남아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매사 짜증만 내자니 스스로 병들어 죽을 것 같고 그냥 잊어버리자니 성격이 허락하지 않는다. 며칠을 끙끙대며 고민해 보았지만, 결론은 늙은이가 못 본 체, 아니면 모르는 체해야지 별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도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지금까지 사용하던 내 닉네임을 바꾸기로 했다. 이제는 늙은이가 되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스스로 지는 해를 뜻하는 ‘낙조인생’ ‘낙조인생’이라 고치기로 하였다. 그러다 보니 닉네임도 자신의 생활에 따라 바뀌는구나 생각하며 내 닉네임을 되돌아본다.

닉네임이란 본래 사람의 생김새나 버릇, 성격 따위의 특징을 가지고 남들이 본명 대신에 지어 부르는 이름이지만 요즘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자기 본명보다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가 다양하겠지만 자기 이름을 숨긴다든지 또는 자기를 멋지게 보이고 싶어서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사용하던 닉네임은 처음에는 아리랑을 사용했었다. 아리랑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 럭비부에서 잠깐 운동을 했는데 그때 뛰는 모습이 양팔을 흔들고 뛰는 자세가 꼭 아리랑 춤을 추는 것 같다고 하여 친구들과 코치 선생님이 붙여 준 별명이었다. 나는 그 아리랑이 순수한 우리 민족의 상징을 나타내는 것 같아 오랫동안 자랑스럽게 별명으로 사용했으며 컴퓨터가 나오자 닉네임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다 10여 년 전 퇴직을 1년 남기고 퇴직 후에 취미 생활로 골프를 하기로 마음먹고 어느 대학에서 실시하는 교원연수에 참여하여 10일간 골프를 배우는데 그 중간에 출장이 있어 7일 정도 골프를 배운 적이 있었다. 골프를 배웠다기보다는 골프채 잡는 법만 배우고 혼자 컴퓨터와 TV를 보고 열심히 연습한 적이 있다. 그때 감히 필드는 나가지 못하고 스크린 골프장을 젊은 선생님들과 종종 다니게 된 것이다. 스크린 골프를 치려면 게임을 하게 되는데 내 기록을 남기기 위하여 닉네임을 사용하게 된다. 이때 아리랑이란 닉네임을 사용하려니 벌써 다른 사람이 사용하여 새로운 닉네임을 만드는데 우리들이 흔히 사용하는 말들은 거의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여 독특한 닉네임이 아니면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만든 닉네임이 시골샘 이었다. 그 뜻은 중소도시에서 샘님 노릇을 하고 있던 사람으로 시골 선생이란 뜻을 나타낸 것인데 사용하다 보니 시골 선생이란 표현 보다 시골의 공동 우물이란 의미가 정감이 가 이메일이나 카톡의 닉네임으로 오랫동안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요즘 눈은 녹내장이 들어왔다고7년이 넘게 하루에 안약을 세 번씩이나 넣는데 죽을 때까지 너야 한단다. 즉 치료 방법이 없어 더 번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약이란다. 거기다 5년 전에 척추협착증에 디스크 파열 수술도 받았으며 요즘은 튼튼하다고 자랑하던 이빨도 다 나가 5개를 임플란트 하고4개를 씌워야 한다면서도 남은 이도 건강한 것도 아니란다. 닷새가 멀다고 이빨 치료를 하려 다니기 시작한 것이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며 치과에 갈 때마다 오는 고통의 공포가 나를 더 늙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자연에서 오는 것이니 달게 받아야지 방법이 있겠는가 생각하고 사는데 집사람이 주는 스트레스는 내 한계를 벗어나는 것 같다. 현직에 있을 때는 별로 몰랐는데 퇴직하고 집에 들어와 보니 잔소리가 보통이 아니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자기 마음에 안 차는 것인지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한 것인지 내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그냥 넘어가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다 보니 서로 언성이 높아지는 날이 많아지자 나는 스스로 나를 타이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으면 그러는가 싶어 이해하고 그의 일손을 높겠다고 깜장에는 열심히 한다고 하는 데 한계가 다다른 모양이다. 매스컴에 황혼 이혼이 많다더니 이래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내 주제로 이혼할 처지도 못 되는 것 같다. 체면과 자존심을 최고로 살아온 인생인데 늙어서 이혼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결국, 모든 것을 침묵으로 일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집사람이 무엇을 하든 또 무어라 하든 상대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런 생활을 해 보니 전보다는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이런 세월이 벌써 9년이나 흘러갔으니 쉽게 고쳐질 수 없을 것 같다. 집사람 자신도 내가 도와주면 도와줄수록 자꾸 일을 시킨다는 것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단다.

 

하긴 두 사람의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끼리 만났다. 나는 막내아들의 큰아들로 태어나 어려서 고향을 떠나 타관에서 살다 보니 내 주변에는 부모님 외에는 아무도 없었으며 늘 일에 바쁜 부모님의 따뜻한 눈길 한 번 받지 못하고 동생들 잘못 본다고 엄한 꾸중만 들으며 자랐으니 성격이 내성적이며 내 의견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성격인데 집사람은 큰아들의 장녀로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 고모 삼촌들 사랑까지도 독차지하며 자랐으니 성격이 외향적이고 남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다. 이처럼 다른 성격이 둘 다 머리 회전은 빨라 한마디 말만 하면 두 마디 앞을 생각하니 서로 조심한다고 해도 부탁 칠 수뿐이 없다. 그래도 젊어서는 직장에 나가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라 별로 몰랐는데 퇴직하고 집에 들어와 보니 용하게도 잘 살았구나! 할 정도다.

 

인생살이가 젊어서는 모르지만 늙어서는 의지할 곳이 자식도 필요 없고 오직 부부뿐이라는 데 내 인생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가슴 한 구석에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한계를 그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지금까지 내가 너무 집사람을 믿고 사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될 수 있으면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주려고 했더니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욕심대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늙었으면 늙은이답게 살아야지 시집가서 잘 사는 딸애들 일까지 사사건건 참견하고 시집온 지가 45년이 넘었는데 시집 동생들까지 챙기려 하니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서방이 눈에 들어올 이가 있겠는가? 그 사람 눈에는 내가 자기 종이고 늙지도 않고 늘 건강한 아이들로 비치는 모양이다.

 

이제는 나도 모든 것을 놔야겠다는 생각을 가지며 석양으로 떨어지는 낙조처럼 화려하고 강렬하지는 못하지만 은은하면서도 황홀하게 비춰주다가 순간 사라지는 태양 같은 사람이 되고자 내 닉네임을 낙조인생이라고 바꾸기로 한 것이다. 이제는 집사람이 무어라 해도 빙긋이 웃으며 대꾸할 것도 없이 내 할 일이나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뜻으로 낙조인생이란 닉네임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