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리(수필)

완전히 적응한 노년 생활 2018년

日陵 2025. 9. 22. 07:30

 

2018년은 내가 직장에서 퇴직한 후 완전 노년 생활에 적응한 한 해가 된 것 같다. 벌써 퇴직한 지도 9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적응할 만도 하지만 나 스스로 생각해도 나의 몸과 마음이 직장 생활할 때의 모습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자유를 얻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크게 보면 지난해와 별 차이는 없지만 살아가는 모습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금년도 내 생활을 크게 나누어 보면 내 건강을 지키겠다는 일일 만 보 이상 걷기 운동 실천과 노년의 취미 생활로 시작한 밭 가꾸기에 정착했다는 뿌듯함과 가정생활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내 노년의 30년 계획 속에 포함된 ‘1억 보의 신화를 실천하기 위하여 지난해는 하루 평균 16,718보를 걸었는데 년 초에 올해에는 1일 이만 보 이상 걷기를 실천하자고 계획을 수정하였다. 그 결과 12월 말일까지 핸드폰 만보기에 찍힌 걸음 총 숫자는 8,112,450 보로 평균 하루 걸은 숫자는 22,226 보로 나타났다. 이를 월별로 표시해 보았다.

 

                                                                      2018년 년 월별 걸음 수

                                                                                                                                                                               단위: 

1 2 3 4 5 6 년 걸음수
총걸음수 702,268 612,015 632,704 632,748 862,235 736,004 8,112,450
7 8 9 10 11 12 1일걸음수
총걸음수 647,274 596,823 599,318 593,857 672,525 824,715 22,226

 

이처럼 이 만 보 이상 걷기 운동을 가볍게 실천하게 된 것은 표에서 보는 것과 같이 1월에서 3월까지 별로 할 일이 없어 걷기에 치중하고 있는데 4월에 아파트 옆 라인에 사는 둘째 딸이 충청남도 체육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함께하는 행복 걷기 챌린지의 앱을 핸드폰에 깔아주어 동참하게 되었다. 그 결과 4월부터는 충청남도 체육회로부터 매월 1회 커피쿠폰을 12월까지 받아서 둘째에게 주었으며, 5월에는 50명에게 주는 걷기 왕으로 선정되어 샤오미 밴드 2를2 받고 12월에는 11월 말까지 300만 보 이상 걸은 사람에게 수여하는 함께하는 행복 걷기 인증서와 300만 보 매달도 받았다. 월별 걸음 수를 분석해 보면1월서부터 3월까지는 겨울철 운동으로 걷기에 주력하였고 4월부터 7월까지는 행복 걷기에 동참하다 보니 걸음 숫자가 많았으나 농사일을 하면서 걷기에 치중하다 보니 몸에 무리가 오는 것 같아 8, 9, 10월 줄어들다 농사일이 끝난 11월부터 걸음 수가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독하게 마음먹고 걸었고 내 생애 최고로 많은 걸음을 걸은 한 해가 되었다. 내년까지 실천할 수 있을까 기대해 본다.

    

두 번째는 이제 내 취미생활인 밭 가꾸기에 정착이 된 것 같다. 퇴직하고 8년이란 세월 속에 매년 밭 만드는 데 시간을 투자했는데 올해에는 제법 농부가 된 것이다. 금년에 수확하여 판매한 대금을 살펴보면 아래 표와 같다.

 

                                            2018년 내가 생산한 농산물 판매대금

                                                                                                                       단위: 

작물명 마늘 머위 아로니아 도라지 들깨 고구마 총액
생산액 275,000 10,000 35,000 765,000 520,000 2,580,000 4,185,000

 

위의 판매대금은 우리 집과 딸들이 먹고 난 과잉 생산물을 판매한 대금이다. 그 외 참깨, 검정콩. 메주콩, 감자, 양파, 배추, , 당근, 수수, 아스파라가스아스파라거스,호박, 가지, 도마도토마토,오이, 방풍나물 등 우리 집은 쌀만 사다 먹고 나머지는 자급자족하는 도시 농부 집이 된 것이다. 이렇게 봄부터 가을까지 매일 밭에 나가서 일하는 동안 내 몸에서 솟아 내는 땀은 나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 주고 새참으로 마시는 소주 한 잔의 맛은 아무나 느낄 수 없는 행복이 담겨 있다. 지난해는 주 작물이 콩(검정콩, 메주콩)과 깨(참깨, 들깨) 종류였는데 올해는 고구마로 바꾸었다. 가을에 고구마 수확 때 나는 수확을 맡고 마나님은 판매를 맡았는데 근 보름간 혼자서 고구마 140kg를 넘게 수확하는 인내력도 보여 줬다.

    

세 번째는 여행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퇴직 후 1년에 두 번 정도 나다니던 해외여행을 포기한 것이다. 이유는 정신발달장애인인 아들이 내가 없으면 나를 찾으며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 자꾸 나가자고 하며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하여 그 아이를 지금까지 키운 마나님을 생각하여 해외여행은 자제하고 온 가족이 함께 떠나는 국내 여행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1 27 28 1 2일로 마나님 칠순이라고 딸과 사위들이 중심이 되어 군산 근대사 박물관을 시작으로 선유도, 채석강, 내소사, 선운산을 다녀왔다. 코스는 나에게 위임해 주어 마나님이 좋아하는 전북을 중심으로 정했다. 모두 다 만족하는 1 2일의 여행이 되었다. 아쉽다면 내가 마나님 선물 하나쯤 왜 못 챙겼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내년 생일날 챙겨 줘야지 하고 다짐해 보지만 깐깐한 마나님 성품에 맞는 선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해 봐야 할 일이다.

 

여름 가족휴가는 8 5일부터 2 3일로 여수로 떠났다. 모처럼 큰마음먹고2달 전에 여수에다 호텔을 예약해 놓은 것이다. 원래 목적은 금오도 비렁길이 아름답다 하여 잡았는데 올해 여름이 유독 더운 날씨로 여수엑스포 아쿠아 관광으로 첫날을 보내고 다음 날은 금오도 비렁길을 걷는데 아들이 더위와 험한 길에 고전 좀 했으나 끝까지 잘 마치고 향일암까지 돌아왔다. 향일암의 경치가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데 힘들어하는 아들을 위하여 다음 기회에 절 뒷산을 오르기로 하고 내려와 다음날 여수만 가면 가는 곳 오동도를 거쳐 올라왔다. 고생스러웠지만 뜻있는 나들이가 되었다.

 

10 27일은 가을 나들이로 초등학교 2학년인 외손자가 학교에서 경주를 배웠다고 경주 박물관을 가자고 하여 즐겁게 승낙하고 세 가족이 경주로 여행을 떠났다. 운전은 둘째와 셋째 사위가 하고 우리 집 세 식구는 분승하여 여행을 떠난 것이다. 첫날은 경주 박물관과 천마총 그리고 첨성대와 첨성대 옆에 있는 핑크 물리 공원을 관광하였다. 나는 사회 선생답게 초등학교 2학년과 7살짜리 외손자들에게 유적지와 유물들을 설명하는데 요 녀석들이 제법 귀를 쫑긋하고 들어 줘 신바람이 났다. 다음날은 석굴암과 토함산 등산을 하고 불국사를 견학한 다음 돌아왔다. 이 녀석들이 조금 더 고학년이 되면 내 차에다 태우고 유적지 견학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며 행복을 느낀 여행이었다.

 

그 외 가족나들이로 내가 지리산 등산을 한다고 하니 베트남에서 여름휴가차 들어온 큰딸이 자기도 가겠다고 따라나서 70대 마나님과 40대 세 딸 그리고 중학교 3학년인 외손녀를 데리고 7 29일 새벽 4시에 지리산을 향하여 출발했다. 딸들과 같이 지리산을 등반한 것은 내가 40대 때 처남들과 같이 등산한 근 25년 전 일이다. 올해는 우리나라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덥다는 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지리산 자연환경을 어쩌지 못하는지 더위를 모르고 산행을 끝낸 것이다. 늙은 마나님이나 살림하고 있는 딸들이 큰 부담 없이 114114년 만의 무더위라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남한 제일의 산이라는 지리산 산행을 큰 부담 없이 마친 가족들의 건강에 아비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지리산 산행에 자신감을 얻은 딸들이 나머지 가족들도 데리고 여름 산행을 한 번 더 하자고 한다. 나는 어린 손자들을 생각하여 8 15일 덕유산 구천동 계곡 산행으로 백련사까지 다녀왔다. 이제 9살과 7살인 외손자가 즐거워하면서 걷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대견하여 종종 데리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긴 그래서 앞에서 이야기한 경주 토함산도 오르게 된 것이다.

그 외에도 친구들과 같이 10 2일 강화도 나들이를 하였으며 11 4일에는 마나님과 아들과 같이 속리산에 다녀왔다. 그리고 광덕산과 성거산은 여름 내내 마음이 울적할 때 혼자 거니는 산길이 되었다.

           

  

그 외에도 올해에 나타난 일들은 내가 4월부터 가벼운 일자리를 찾았다는 것이다. 마나님 성화라기보다는 내 마음이 변했나 나사렛대학에 가서 5일간 장애인 활동보조사 교육을 받고 4월부터 오전 오후로 장애인 활동보조사 일을 한 것은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돈이 아쉬운 사람도 아니고 할 일이 없는 사람도 아닌데 남을 돕는다는 마음에서 하는 일이 즐거웠다.  8월 말경 무더운 여름날에 인천에까지 가서 처조카 주례를 봐주는 등 가능한 마나님 비위를 맞추기에 신경을 쓴 한 해가 된 것 같다. 그리고 단편 소설을 써 보겠다고 바쁜 여름 책상 앞에 쭈그리고 앉자 있다가 마나님 잔소리에 겨울철로 밀기도 했다.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지만, 몸은 서서히 망가지는지 녹내장약을 그리 열심히 넣어보지만, 시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으며 연말에는 치아에도 문제가 생겨 치과를 찾아가니 5개의 임플란트에다 4개를 씌워야 한단다. 그러다 보니 11월부터는 1주일이 멀다 않고 치과에 가는데 아마 내년 5월까지는 가야 할 모양이다. 그런데다 올해 11월 초에 다정했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작년 10월 동해안 단풍놀이를 다녀온 것이 그와 마지막 나들이로 쓰러진 지 1년 만에 결국 저세상으로 간 것이다. 그가 병실에 있을 때 병문안을 하면서 나에게 어떤 심적 변화를 줬는지 12월 초 보건소를 찾아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놓았다. 쓰러지면 구차하게 치료하지 말고 눈을 감을 수 있게 해 달라는 뜻이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살아도 내 마음을 무겁게 내려 누르는 것이 있다. 큰 아들인 나에게 요양원에 계신 어머님은 모시지 못하는 것이 죄스러워 마음 한구석을 억누르고 있고 정신발달장애인인 아들을 보면 아침저녁 열심히 씻기고 보살피지만, 가슴 한구석을 아리게 하고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모양이다. 운명이라? 또는 숙명이라? 위로해 보지만 벗어날 수 없는 내가 죽을 때까지 느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인 것이다.

 

종합적으로 1년을 평가해 볼 때 이제는 노년의 생활도 안착한 것 같고 건강도 많이 좋아져 이 정도면 늙은이 행복한 것이 아닌가 자화자천하며 새로운 한 해를 기다려 본다. 이제 가족들과 환한 웃음을 웃으며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자야지. 그리고 내일 아침부터 또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해야지. 행복했다 2018년 이제는 하나의 꿈결이 되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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