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자 이사장은 한숨을 내 쉬며
“오늘 어머니들이 나를 슬프게 만들려고 하네.” 하면서 또다시 음료수로 입을 적신다.
그러면서
“참 내 인생도 기구하다오.
나는 자식을 삼 남매 두었는데 첫 아이가 지적 장애가 있는 아들로 여러 가지 합병증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그다음은 딸만 둘을 두었지요.
그러다 보니 애 아버지가 집안사람과 동래 사람들에게 창피하다고 고향을 떠나 이곳까지 오게 되었답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우리나라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장애인을 둔 부모는 자신도 모르게 사회의 죄인이 되었지요.
그리고 장애인이 밖으로 나가면 아이들이 따라다니며 놀리고 사람들이 흉을 봐 밖에 나가 놀 수도 없는 사회였답니다.” 하며 한숨을 짓자
샛별이 어머니가
“그려요.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장애인은 그만두고 딸만 낳고 아들이 없으면 집안 어른들에게 죄인이 된 것 같이 기를 펴지 못했고 마을 사람들도 아들이 없다고 뒤통수에 대고 손가락 질을 하며 수군대던 것이 우리나라였지요.” 하며 장단을 맞춘다.
“이곳에는 친척도 없고 아는 사람이 없었으며, 고향에서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가지고 온 돈으로 시내 주변에 농사나 지으며 조용히 숨어서 살자고 배나무가 심어 있는 야산의 구릉지를 하나 산 것이 지금 청송원이 있는 이곳이랍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크면서 마음의 갈등은 끝이 없었다오.” 하며 한숨을 내쉬고 조금 숨을 고른 다음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가 타관에 와 살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아들의 학교 문제였지요.
그때는 우리 지방에 특수학교가 생기기 전이라 일반 초등학교에 열 살이 넘어 느지감치 제 동생과 함께 초등학교에 보내 봤지만 같이 다니는 여동생이 창피하다며 같이 가지 않겠다고 하고 담임선생님에게도 미안하여 6개월 정도 다니다 그만두게 되었답니다.
그러다 보니 내 큰아들은 의무교육인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사람이 되었으며 매일 집안에만 있는 사람이 되었지요.”
“이사장님의 그때 심정을 이해할 것 같네요.
제 딸도 13살이 될 때까지 학교를 보내지 못했으니까요.” 하면서 꽃님이 어머니가 거든다.
“이런 세월 속에 아이는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 가는데 아들의 장래를 생각하니 앞길이 막막했지요.
그러다 1980년대부터 우리나라도 경제 규모가 커지자 국가에서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장애인에 관한 법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지요.
우리 부부는 점점 늙어 가는데 앞으로 우리가 죽고 나면 내 아이가 이 세상에서 고통받지 않고 살아갈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답니다.
이런 고민 속에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온 가족이 열심히 성당에 나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신부님이 우리 부부의 고민을 알고 이 곳에다 장애인 생활복지원을 만들어 운영해 보라고 하잖아요.
그러면서 자기가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테니까 복지원을 만들어 아이와 같이 생활하다 다음 이사장에게 복지원을 넘겨주면서 아이를 부탁하면 되지 않겠냐는 식으로 말씀을 하셨지요.”
“신부님이 방법을 가르쳐 주셨군요.” 하고 센터장이 한마디 거든다.
“그런 와중에 어느 날 지방에 있는 사립대학에서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한다는 5촌 조카가 찾아와 6촌 동생을 위하여 지금 이곳에다 장애인 시설을 하나 만들면 사회를 위해서도 좋고 보람된 일이며 아이의 장래도 보장된다고 권하잖아요.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앞으로 사회가 점점 발전하면서 사회복지를 강조하는 나라로 변해 갈 것이며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것이라고 침이 마르도록 권했지요.
그런데 어디 일이 그리 쉽게 됩니까?
더구나 관공서 돈을 이용하는데“
“그려요, 이렇게 큰 시설을 만드는데 과정이 얼마나 복잡했겠어요.” 하며 젊은 어머니 한 분이 거든다.
그러자 센터장과 어머니들이 돌아가며
“대단해요. 이사장님”
“결단하기도 쉽지가 않았을 텐데?”
“가족들은 모두 쉽게 찬성했던 모양이지요?” 하고 한 마디씩 한다.
“아니지.
처음에는 갈등도 많았고 고민도 많이 했지요.
특히 애 아버지가 고향도 아니고 타관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일이 그리 쉽게 되겠냐며 극구 반대하다가 아이가 커가면서 내가 고민하는 것이 안쓰럽게 보였나 어느 날
‘어디 한번 해 봅시다’라고 허락을 하잖아요.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모두 이사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대단하다는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다.
그러자 센터장이
“어머님들 이사장님 이야기도 좋지만, 앞에 있는 음료수와 과일도 좀 드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시죠.” 하며 다과를 권하자
이사장도 약간 목이 멘 소리로
“나도 한 잔 더 마셔야겠는데” 하며 어머니들에게 과일이나 음료수를 한 잔씩 더 마시라고 권한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끝이 없이 흘러갔다.
이사장은 복지원을 설립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웠던 점과 시청 복지과 직원의 적극적인 자문과 신부님의 도움으로 우리 시에서 처음으로 장애인 복지시설을 만들게 되었으며 그동안 우리 지역 각 관공서에서도 많은 격려와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지원해 주어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하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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