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안나푸르나 트레킹 소감

日陵 2025. 9. 19. 10:16

 

 

1. 코스: 나야 폴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2. 동행인: 큰딸 진이와 함께

3. 산행일: 2016. 10. 17 ~ 10. 21(4박 5일)

4. 소감문:

호찌민에 살고 있는 큰딸이 아빠 古稀 기념으로 히말리아 트레킹을 하자고 지난 3월에 제의가 들어와 겁 없이 덜컹 승낙을 하고 말았다. 평소 걷는 것은 자신이 있기에 부담 없이 대답한 것이다. 10월 15일 호찌민에서 네팔에 직접 가는 비행기가 없어 말레이시아 쿠알륨프에서 하루 자고 16일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카트만두에 도착한 나는 엉성한 공항과 복잡한 출국수속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예약된 호텔을 찾아 택시를 타고 찾아 가는데 겁이 나기 시작했다. 택시가 모두 우리나라 모닝같이 조그만 소형차인데 딸이 가격을 흥정하는데 깎아서 그런지 백미라도 덜거덕 거리며 앞자리에 않은 내 의자가 앞뒤로 제 맘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네팔의 수도라는데 패인 도로며 신호체계 및 교통질서가 도저히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지 못하고 불안에 긴장을 바짝 하게 만들었다. 20여분이나 공포 속에 달여 온 택시가 차 한대 겨우 드나드는 골목길로 접어들어 가더니 호텔이라 내려놓는다. 우리네 시골의 여인숙도 이보다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한 번 매인 몸이라 피할 수도 없고 견딜 수밖에 없다. 

다음날 아침 다시 포카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하여 택시를 불러 타고 시가지로 나오는 데 큰길이 많이 보이고 모두 다 골목길이며 도로가 군데군데 파여있었다. 조금 넓은 도로에 일열로 늘어 선 버스 중 포카리나로 가는 버스를 찾아 타고 딸에게 물어보니 우리가 지금 있는 이곳이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의 중심 시가지란다. 아마 우리네 60년대 군 단위 소재지 같은 풍경 같이 느껴 젖다. 도로포장은 되어 있는데 도로 양쪽이 팽겨 나가 버스가 얼마나 흔들거리고 뛰는지 정신없는 상황에 8시간 가까이 산을 넘고 또 넘어 포카라에 도착했다. 아주 멋진 추억이 된 것이다.

 

10. 17일(네팔 카트만두 호텔 및 도심 시가지 모습)                     

 

포카라는 수도라는 카트만두보다 도로와 건물들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한식집을 찾아가 한식으로 저녁을 먹자고 약속하고 시가지와 호수 산책을 한 다음 한국인이 직접 운영한다는 한국인 식당(낮술)을 찾아갔다. 저녁 식사는 삼겹살과 된장찌개로 맛있게 먹었다. 

딸은 이 번이 두 번째라 그의 안내를 받아 그가 안내해 주는 대로 모든 것을 맡겼다.

 

10월 17일(포카라 호텔 및 호수 주변)                                   

 

아침 8시가 조금 지나 다시 호텔에서 소개해 준 포터 두 사람을 만나 인사를 하고 다시 택시를 타고 나 야폴로 이동했다. 네팔 택시는 모다 소형택시로 작은 차에 커다란 배낭 두 개를 싣고 4 사람이 타니 뒤에 탄 사람들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딸의 배려로 그나마 앞자리에 않자 다행이었으나 어제 칸투만두 택시 같은 공포감은 없었으나 이번 차도 거기가 거기였다. 패여 나 간 도로를 제 마음대로 달리며 중앙 분리대도 표시가 되어있지 않은 도로를 기사 마음대로 추월해 가는데 가슴이 쿵더쿵쿵더쿵한다 처음에는 겁을 먹었으나 에라 모르겠다 죽어도 별 수 없지? 하는 마음을 가지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산행 1일 차, 나야 폴에서 촘롬(10월 18일): 한 시간 남짓 달여 나야 폴에 도착하자 본격 트레이킹이 시작되나 보다 생각하고 등산화 끈을 죠여 매고 산행을 시작하려 하는데 딸과 포터가 무어라고 주고받고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누더니 다시 지프차를 타잔다. 이유는 우리의 트레이킹 목적지가 A.B.C라고 하니까 5박 6일 가지고는 절대 갈 수가 없다며 푼힐코스를 권하는 데 딸은 안된다고 하자 일정을 줄이기 위하여 사우리바자르까지 차로 이동하자고 한단다.

지프차를 이용하여 이동하다 보니 잘 선택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가 비포장에다 그늘이 없는 신작로라 먼지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먼 곳까지 와서 먼지를 쓰고 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의 정신 상태가 어찌 되었나 앞 차가 먼지를 이르키고 달리는데 우리 차가 먼지를 다 뒤집어쓰며 따라가고 있다. 운전기사가 먼지라는 개념이 없는 모양이다. 결국 나는 잔소리를 한마디 했다. 먼지를 피해서 천천히 가라고 하니 늙은이 말이라 그런지 순순히 잘 따라 준다. 

 

나야 폴에서 사우리바자르                                       

 

사우리바자르에 11시경 도착하여 본격적으로 트레이킹이 시작되었다. 70세 늙은이라 젊은 층에게 떨어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걸었다. 원래 매일 만보이상 걷기를 시작한 지가 3년이란 세월이 지나 지난 8월 지리산 대원사에서 천왕봉까지 혼자 산행을 하는데 별로 무리 없이 마친 경험도 있고 하여 그리 뒤처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빨리는 걷지 않지만 쉬지 않고 꾸준한 거름 거리를 유지하는 데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처음부터 나는 우리 일행들과 같이 걷는 것을 포기하였다. 그들이 쉴 때 나는 걸어야 그들과 보조를 맞출 수 있기에 먼저 출발하고 그들이 따라오면 앞세우는 형태로 산행이 끝날 때까지 계속하다 보니 딸하고 이야기할 시간도 제대로 갖지 못했다. 40여분 걸었을까 내 허리에 찬 만보기가 3,000의 숫자가 찍혀 있다. 점심을 먹자고 하여 쉬는 곳이 어데인가 살펴보니 난드룩이었다. 점심 식사를 하며 딸과 포터 사이에 오늘 저녁 숙소문제를 상의하는 모양이다.

 

5박 6일에 산행을 끝내려면 오늘 촘롬까지 가야 하는데 촘롱은 숙소가 없어 사전 예약을 해야 하고 만약 가지 못하면 예약 취소 금을 내야 한단다. 내 머리가 하얀 백발의 늙은이고 40대 초반 젊은 여자와 둘이 산행을 하니 만만하게 보이는 모양인지 돈을 저희들에게 맡기면 알아서 숙소를 예약한다고 돈을 맡기라고 한단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나는 답답했다. 점심 먹는 동안에 우연히 한국인 두 사람을 만났는 데 알고 보니 내가 살고 있는 천안의 옆 동내 공주에서 왔단다.  반갑게 인사를 하며 포토가 한 이야기를 전하자 절대 맡기지 말고 촌놈에는 숙소가 많이 있으니 그리 걱정하지 말란다. 그리고 오늘 촘롬까지 가야 한다고 말하자 내 나이를 물어 이제 막 70이라 하니 무리라며 지누단다까지만 가라고 권했다.

 

딸에게 돈을 절대 막기지 말라고 당부하고 주위를 감상하며 쉬지 않고 한들한들 꾸준하게 걷기 시작하였다. 딸과 포토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걷는 내 걸음은 결코 그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걸음 걸이었다. 2시간 반쯤 걸었을까? 지누 단다(1780m)에 도착하니 오후 3시경이 되었다. 인터넷을 검색할 때 '오후 3시 정도면 산행을 중지하고 일찍 쉬'라는 데라는 생각을 하니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몰려왔다. 그래서 오늘은 이 정도만 했으면 하는데, 우리 일행은 다음 쉼터인 촘롬(2170m)까지 가야 한단다. 지누단다에서 촘롬까지는 잘은 모르지만 언 듯 보니 설악산 소청봉에서 내려오는 쉬운 각 코스보다 더 가팔라 보이며 훨씬 길어 보였다. 물 한 모금 마시고 까더라 까더라 오르기 시작했다. 포토의 말로는 두 시간을 걸어야 한다니 잘 해낼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난 8월 지리산싸리봉에서 중봉을 거쳐 천왕봉을 오르던 생각을 하니 이곳은 그보다 힘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오르고 또 오르기 시작하였다.

 

혹시나 고산병이 올까 봐 가뜩이나 차오르는 호흡을 신호흡법으로 조절하면서 걸었다. 이렇게 혼자 걷는 중에 50, 60대 아줌마들이 떼를 지어 내려오면서 골짝에 하얐게 핀 꽃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수다를 떠는 것을 보고 나는 왈

"꽃 보다 아름다운 분들이 시구만 그 꽃이 뭐가 아름답습니까?"라고 말을 걸자 쾌나 반가운지 내 하얀 머리를 보고

"어머나 누구랑 같이 왔습니까?" 한다.

"딸과 둘이 왔습니다"하니

"세상에 불어워라! 역시 딸이 최고야" 하면서 인사를 한다. 아마 한국인을 만나니 쾌나 반가웠던 모양이다.

이렇게 걷다 보니 시간은 어두워질 시간이 않은데 어두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힘이 들어서 그런가? 생각하고 있는데 원주민 젊은 친구가 올라오다 내 흰머리를 보고 감탄을 하며 나이를 묻는다. 내가 70이라고 하니 '원더풀" "원더풇" 하면서 오른다. 촘륨에 한 시간 반에 올라왔지만 나는 숨이 턱 밑까지 찾으며 머리가 띵하고 숨이 차 혹시 고산병이 오는 것이 않인가 하는 생각이 들며 살짝 겁이 낮다.

 

숙소에 들어오니 냉기가 가득하여 체면이고 뭐고 필요 없이 엉털이 사워장에 들어가 물만 한 번 묻히고 따뜻한 겨울 옷으로 갈아입으니 좀 살 것 같다. 저녁이 되니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진 모양이다. 저녁을 먹으며 맥주 한 캔에 준비해 온 18년 산 밸런타인을 타서 한잔 마시니 추위도 가시고 몸도 따뜻해졌다.

 

                             사우리바자르에서 촘롬까지 사진과 촘롱에서 본 히말리아 사진                                 

 

산행 2일 차, 촘롱에서 히말리아(10월 19일): 본격적인 트레이킹이 시작되었다. 촘롱에서 산행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들여보내 준다. 혼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인가를 거치고 다리를 건너 고개를 오르고 내려가며 열심히 걷고 또 걷는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만끽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쉬지 않고 까더라 거리며 걷는 내 걸음은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뒤지지는 않는 걸음이었다. 걷는 동안 시누와에서 만난 소떼와 양 떼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내려가면서 인사를 주고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영어나 네팔말로 인사를 하도 나는 고집스럽게

"안녕하세요?"라고 답하였다.

그것은 나만의 고집이요, 우리 것을 보급하고자 하는 의미도 있다. 허긴 유럽 여행을 갔을 때도 가이드가 그 나라말로 기사에게 인사를 하라고 하는데 나는 "우리말을 가리켜라. 내 돈 주고 여행 왔는데 왜 내가 이나라 말을 써야 하냐"라고 나무란 적이 있으며 해외에 나가서 기사들에게 인사를 할 때 꼭

"안녕하세요?"라고 하는 것이 나의 인사 법이었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하다 보니 동양계 중 중국인인가, 일본인인가, 한국인인가 잘 구분이 안 될 때 한국인을 만나면 반가워서 다시 한번 더 바라보며 인사를 한다. 그리고 원 주민들도 제법 우리말 인사법을 알고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며 웃어주는 친구들도 제법 만났다.

 

혼자 행복 속에 만취되어 걷는 나를 간혹 서양의 젊은이들은 나를 앞지르며 걷는 층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나의 꾸준한 걸음 거리에 뒤처지기 일 수였다. 우리 포토는 나만 만나면 최고라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천천히" "천천히"라고 말을 한다. 아마 내가 지쳐 쓰러질까 봐 걱정인가? 아니면 짐을 메고 가는 저희들이 힘들어서 그런지는 알 수가 없었다.

 

밤부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데 별로 먹고 싶은 것이 없어 차 한잔과 수프 한 잔으로 때우고 다시 걷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며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닐 비옷을 배낭 위에 뒤집어 씌우고 걷는데 빗방울은 점점 굵어져 그칠 것 같으면서도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린다. 비를 맞으며 걷다 보니 중국에서 온 모양인 아시아계통의 50대 두 사람과 아가씨들이 비옷을 준비하지 않았는지 비를 흡뿍 맞으며 힘들어하는 모습이 너무 애초로워 보였으나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나는 얇은 비닉 비옷으로 배낭을 씌우고 자그마한 우산을 받고 가니 이슬비보다 조금 더 굵은 비는 그리 걱정되지 않고 낭만적이었다.

 

가는 도중 숙소가 히말리아라는데 잠자리가 딱 두 자리 남았다고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것도 4 사람이 자는 숙소로 앞으로 숙소에서는 샤워도 할 수 없고 발 씻는 것도 어렵다고 한다. 비를 맞고 5시경 숙소에 도착해 먼저 도착한 딸이 안내해 주는 숙소를 들어가 보니 기가 막히었다. 2,3평 남짓한 곳에 침대가 4개 들어 있는데 세 개가 쪼로로 있고 하나는 출입구 쪽에 다른 침대 발끝에 놓여 있다. 가까스로 문을 여닫고 배낭 놀 자리가 마땅찬 아 창틀에 올려놓는 비좁은 방이었다. 

내가 사용하는 숙소에는 영국에서 왔다는 20대 아가씨 두 사람과 딸 그리고 나니, 여자들 자는 곳에서 끼어 자는 신세가 되었다. 비를 맞아 축축한 나는 체면이고 무엇이고 없이 옷을 갈아입을 데가 없어 아가씨들에게 뒤 돌아보라 하고 따뜻한 털옷으로 가라 입고 침랑 속에 들어가니 차가운 몸이 좀 풀어진다. 고산에 올라와서 그런지 숙소에 들어설 때 무척 추위를 늦겼다. 하긴 어제저녁 때도 낫에는 몰랐는데 저녁때가 되니 기온이 뚝 떨어졌다.

저녁을 먹는데 원주민과 포터가 음식을 손고락으로 먹는 것이 눈에 들어오자 비위가 약한 나는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밥을 취소하라고 하니 딸이 우리가 밥을 먹지 않으면 포터들이 굶어야 한다고 해서 시켜서 포터들이나 주라고 하고 나는 맥주 한 통에 양주를 넣어 마시는 것으로 식사를 대신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이곳부터는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었다. 통화가 되지 않는 곳에 들어 와 있는 것이다.

 

촘롱에서 히말리아까지 사진                

 

 

산행 3일 차, 히말리아에서 A.B.C(10월 20일): 아침 일어나 보니 날씨가 언제 비가 왔냐고 싹 개여 있었다. 방에서 나와 내가 잔 숙소의 주변을 돌아보니 앞 뒤가 험하디 험한 산으로 되어 있으며 양쪽 산 계곡 자락에 위치하고 있었다. 영국 아가씨들은 다섯 시에 아침도 먹지 않고 산행을 시작한다고 나갔다. 산행에 초보자들인지 침낭도 준비하지 않고 어제 비를 맞았으니 고생이 말이 않이였으나 산장에서 늦게 가져다준 이불을 덮고 고생깨나 하면서 잔 잠자리였다.

젊음이 재산인 친구들이니 늙은 내 눈에는 그들이 부러웠다. 8 시에 다시 산행이 시작되었는데 고산지대라 그런지 오늘은 어제와 같이 사람들이 많지가 않았다. 아마 중도에서 포기한 것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계획이 없었는가 알 수는 없다. 히말리아(2920m)에서 데우랄리(3230m)까지 가는데 산행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몸도 가볍고 주변의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사람들도 간혹 눈에 보이고 주변의 경치와 하늘의 색깔이 너무 아름다워 이곳저곳 아름다운 자연을 폰에 담아 본다. 딸도 자연에 취해 걸음 속도가 느려졌다.

 

오늘 숙소는 D.B.C(마차푸차 베이스 캪프, 3,700m)에서 자기로 했다. 내가 늙어 A.B.C까지 가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트레킹을 하는 동안 내가 걷는 모습을 보고 잘 걷는다고 MDC(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 숙소를 정하고 점심을 먹은 다음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갔다 오자고 일정을 조정하였다.

 

데우랄리까지 오는 동안 아름다운 경치에 흡북 빠져 있었다. KBS 다큐맨트리에서 방영해 준 곳이 데우랄리까지였다. 촬영을 몇 월에 와서 했는지 눈이 많이 와서, 데우랄리에서 통제를 하여 더 이상 오를 수가 없으며 이곳으로 가면 안나푸르나가 있다며 아쉬워하는 장면을 연출하던 PD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걷는데 나는 금방 오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데우랄리에서 mbc를 가는데 거리가 쉽게 줄어들지 않고 저기가 mbc인가? 아니면 저 고개 너머에 mbc가 있나 하면서 걷는데 쉽게 나타나지가 않는다. 아침 출발할 때 그 좋은 날씨가 11시쯤 되니 구름이 몰여 와 곳 비가 내릴 것 같은 어둠 침침한 날씨로 변하였다. 정신은 맑은데 몸은 지쳐 있는지 허리가 잘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먹은 것이 부족했나. 물을 적게 마셨나. 아니면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는 것인가? 별별 생각을 다 해 본다. 허긴 꿀에다 홍삼진액을 탄 물을 조금씩 마시며 어제저녁부터 다른 음식은 거의 입에다 너는 것이 없으니 몸도 지쳐갈 만했다.

MBC에 도착했을 때는 더 이상 걷고 싶은 생각이 없어 점심을 먹고 ABC를 가자고 하는데 나는 더 이상 못 가겠다고 숙소로 들어가 버렸다. 머리가 띵하고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원래 계획은 여기다 숙소를 정하고 ABC를 다녀와 내일은 일찍 하산하기로 했는데 내가 ABC에 가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딸은 포터 한 사람과 ABC로 향하고 나는 침랑 속에서 한 시간 정도 잠을 잦나 눈을 떠보니 정신이 말짱하고 몸이 가뿐하게 풀어져 있었다. 숙소도 마지막에 잡은 숙소라 침침하고 포터와 같이 자는 창고만도 못한 후진 숙소였다. 

 

그때 내 포토가 주변 산책을 하자며 나가기를 권하여 주변을 산책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우연히 한국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도 MBC에다 숙소를 정하고 혼자 산책을 나온 모양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영어 교사를 하다 그만두고 스님이 되었다며 자주 가이드 없이  해외 나들이를 한단다. 우리 두 사람은 몇 마디 말에 친해져 지진이야기, 종교 이야기 등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얼마나 흘렸나 딸아이가 돌아왔다.

이곳의 공기는 지금까지 내가 한 번도 마셔보지 못한 공기인 모양이다. 지금까지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등 우리나라 높은 산을 수시로 다녀 봤지만 지금 이곳에서 느끼는 공기 맛은 느껴 보지 못하였다. 공기가 얼마나 맑은지 내 머릿속에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게 해 주었으며 이 공기를 풍선에 담아 가 집사람에게 줄 수는 없는가 하는 허황된 생각도 해 보았다.

 

히말리아에서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산행 4일 차, A.b.C에서 시누와(10월 21일): 새벽 다섯 시가 되니 산행을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섯 시 반쯤 잠도 오지 않아 옷을 입고 나와보니 어제와는 달리 너무나 아름다운 아침이었다. 몸도 가볍고 어제 가보지 못한 ABC가 생각나는 것이다. 아침 해를 보는 것이 ABC에서 보는 것과 MBC에서 보는 것이 다를 것이라는 늦낌이 들어 고개 마루 하나만 올라가서 보자고 하면서 오르기 시작했다. 딸이 뒤에서 따라온다고 하여 혼자 으슥한 한기를 이겨가며 조금씩 쪼금씩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머문 곳은 해발 3700M이니 이왕 온 것 4000M는 올라야 자랑 거리가 될 것도 같아 계속 오르기 시작했다.

 

어제 데우랄리에서 MBC까지 오르는 데는 상당한 급 경사가 있었는데 MBC에서 ABC를 오르는 데는 경사가 완만하고 길이 좋았다. 모롱이를 돌고 나면 또 나오고, 금방 눈앞에 안나푸르나가 나타날 것 같은데 멀리 떨어져 있다. 뒤를 돌아보니 딸아이가 저만큼 뒤에 나타나 걸어오고 있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펼쳐지는 안나푸르나 남봉의 설경을 폰에 담고 또 담아 본다. 구름 하나 없이 맑은 하늘에 너무나 아름다움을 시기하나 한쪽에서 안개구름이 나타나 조금씩 조금씩 가려져 혹시나 다 가려질 끼 봐 열심히 폰에 영상을 담아 본다. 딸아이가 얼른 따라와 사진이라도 하나 찍어 줬으면 하는데 나타나지 않아 혼자 셀카로 담아보니 마음에 들지 않아 지워 버리고 또 걷고 걷다 보니 내려오는 사람이 나타나 폰을 넘겨주며 한 장 부탁드린다. 그러다 또 오르니 저만치에 ABC가 눈에 들어온다. 또다시 내려오는 분에게 사진 한 장 부탁드리며 그의 사진도 한 장 담아 본다. 그렇게 걷다 보니 ABC에 거의 다 왔는데 어제저녁때 만난 스님이 언제 올라갔는지 내려오면서 인사를 하여 반갑게 인사하고 사진도 한 장 부탁드렸다.

 

A.B.C 아침 모습(영원한 꿈속의 환상)                    

히마리아 남봉 아침 모습
마차푸레 아침 모습

 

MBC에서 9시가 가까워 아침을 먹고 하산을 시작했다. 오를 때 그리 힘들더니 내려오는 발걸음은 매우 빠르게 움직였다. 돌아간다는 기쁨인 모양이다.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콧노래를 부르며 경쾌하게 걸었다. 아마 아침에 본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 봉우리들의 기운이 내 몸에 뻗친 것인가? 

빙하수가 흐르는 냇물도 사진에 담아보며 간간이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인사가 가볍게 나갔다. 도반에서 점심을 먹는데 나는 수프 하나로 때웠다. 아침에 토스트를 시켰는데 토스트에 뻐더를 얼마나 넣었는지 기름이 줄줄 흘러 억지로 먹은 것이 속을 버린 모양이다. 아침도 쉬원찬은데다 점심까지 거르다 보니 오후에는 힘이 들었다. 그리고 시누와에다 숙소를 잡은 것이 무리였나~,

허긴 이틀 올라간 곳을 하루에 내려오는 모양새가 되었으니 지칠 만도 했다. 더구나 올 때 몰랐는데 밤부에서 시누아를 오는데 오르는 계단이 몇 백인지 오르고 또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천여 개도 넘는 것이 안 인지? 지금까지 내가 올라 다닌 산중에서 제일 많은 계단을 오른 것 같다. 이 많은 계단을 올 때는 왜 몰랐을까? 아마 정신무장에서 오를 때는 몰랐던 모양이다.

 

시누와에 왔을 때는 상당이 지친 몸이었으나 이곳은 침실이 침대 두 개라 딸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를 맞이할 수가 있었으며 따뜻한 물로 발도 닦을 수 있었다. 3일 만에 세수를 하고 발을 씻을 수 있었다. 히말리아부터 핸드폰이 먹통이었는데 이제는 전화도 되고 문자가 통하였다. 마나님에게 문자를 날려 본다.

"보고 싶다고, 그리고 사랑한다"라고 늙은이 밥 안 줄까 봐 아양을 떨어보는 것이다.

 

MBC에서 시누이                       

 

 

산행 5일 차, 시누와에서 나 야폴(10월 22일): 힘차게 하산하기 시작한다. 말이 하산이지 시누와에서 촌롬까지는 골짝을 내려 갇다 다시 오르는 험난한 고갯길이 있으며 촘롱에서 지누단다까지 급경사 내리막과 다시 오르는 길들은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포토와 딸은 오늘 쉴 자리를 지누단다에서 온천을 하고 쉬었다 가자는데 나는 일찍 하산하여 포카라 호텔에 가서 편안하게 쉬자고 주장하였다. 처음에는 포토들이 반대하는 것 같이 보이더니 찬성하여 나는 점심도 먹지 않고 걸음을 재촉하여 3시쯤 사우리 바자르까지 내려와 택시를 타고 포카라호텔로 들어왔다.

오는 도중 택시 기사가 얼마나 난폭했는지 내 간이 콩알만 해진 것 같았다. 차도 낡은 소형차에 도로는 다 파였는데 틈만 있으면 추월이라 사고 없이 온 것이 기적이었다. 다시는 이런 차는 타지 않으리라. 아마 운임을 깎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운전이었다. 갈 때는 좀 살살 가라고 말을 했는데 올 때는 그런 잔소리도 하기 싫어 놔뒀버렸다.

 

시누와에서 나 야폴                  

 

 

5박 6일 산행을 4박 5일에 맞히고 카트만두에서 하루 자기로 약속된 것을 취소하고 포카라에서 3일간 휴식하며 이슬이란 한국인 식당에 가 불고기도 먹고 비빔밥도 먹으며 몸을 회복시켰다. 20여 개가 넘는 나라를 여행해 보았지만 한국인 식당 중에서 이곳의 낮술이란 식당처럼 본토 음식 맞을 내는 곳은 처음이었다. 특히 비빔밥과 불고기는 칭찬하고 칭찬할 만했다. 국내 식당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칸투만두는 올 때 버스에 놀라  비행기로 가기로 결정했다. 포카라에서 칸투만두 비행기는 30인 승 소형 비행기로 약 30여분 걸린다고 했다. 오는 도중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히말리아산이 너무 아름다웠다. 꿈속의 여행 안나푸르나.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다시 한번 더 도전해 보고 싶은데 이제는 기회가 없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창 밖에 펼쳐진 히말리아 산맥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딸아 고맙다. 아비를 젊게 해 줘서---"라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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