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일 마눌님(내가 사용하는 애칭)은 계룡산 산행을 한단다. 산을 좋아하는 서방님 놔두고 처제들과 큰 처남댁 하고 같이 봄 산행을 한단다.
일 년 산행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 산행이요, 그중에서도 오월 산행을 제일 좋아한다. 사월의 몸서리치던 바람도 사라지고 야들야들 한 나무 잎들이 어린아이 고사리손 같이 보드라워 보이는 것이 오월의 신록이 않인가? 화창한 봄 날씨에 덥지도 춥지도 않은 기후에 연초록의 신록이 매혹 중에 매혹이 않아던가?
그래서 마누라님이 나에게 하루쯤 시간을 내줄 줄 알았는데 매일 가뭄의 떼약 볕이 내려 쬐는 밭에서 헤매는 남편은 팽기치고 자기 동생들과 산행을 한단다.
가정환경의 조건이 맏지 않아 부부간이 같이 시간을 낸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주중은 마누라님이 몇 푼을 받나 모르지만 장애인 돌보미를 한다고 시간을 낼 수 없고 주말은 1급 중증 발달장애인을 아들로 두고 있는 가정이다 보니 부부가 짬을 낸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환경이다.
나는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한 후 그동안 가정 일을 하며 장애아들을 키워준 마누라님이 안쓰러워 지난날의 직장 동료와 친구들 관계를 정리하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 고작인 사람이다. 그러다가 스트레스가 쌓이면 일 년에 한 두 차례 혼자서 외롭게 해외여행을 하는 것이 내 생활의 전부다.
이것도 마누라님에게 미안하여 마누라님도 친구들과 해외여행 가는 모임을 하도록 권장을 하였다. 그리고 여행을 갈 때면 식성이 까다로운 아들에게 할 줄도 모르는 음식을 만들어 온갖 비우를 다 맞히며 돌보아 주는 것이다.
이런 우리 부부는 친구는 그만두고 부모 형제나 친척들로부터도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태어 낳기에 사는 것이지'라는 사고 의식이 뇌리에 가득하니 인간의 정이 남아 있을 이가 없다. 이런 사고 속에 사는 사람들이니 부부간의 갈등이 많을 수 밖에 없고 두 사람의 대화도 곱지가 못하다. 대화 두 마디만 하면 서로 의견이 달라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 다반 수다.
늙어 가면서 이런 가정생활을 고처 보려고 가진 애를 써 보는데도 그리 쉽지가 않다. 내 성격이 잘못되었나 마누라님의 개성이 너무 강한 것인가? 알 수는 없지만 마음을 다지고 또 다져봐도 웃음꽃이 피는 가정을 만들기가 그리 쉽지가 않다. 세상 다 잃어버리고 우리 세 식구만 생각하자면서 토요일 일요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약속하지 말고 세 식구만을 위하여 시간은 활용하자고 누누이 약속했는데 막네 처제의 말 한마디에 서방과 자식은 다 내 팽개치고 혼자 봄 산행을 한단다.
원래 오늘은 옆에 사는 딸아이에게 아침 한나절만 집을 봐달라고 부탁을 하고 새벽에 참깨밭에 가서 일을 하자고 약속했는데 피곤하다 핑개(허긴 어제 참깨밭에서 무리하게 일을 한 것도 사실임)로 가지 않았다. 마누라님이 밭에서 돌아온 시간이 오전 9시 반경인데, 그는 또다시 아들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먹는 우유를 사겠다고 마트에 가고 나는 밥을 한다. 그러다 보니 아침을 먹은 시간이 11시가 다 되어서였다.
아침을 먹고나 아들과 같이 제1농장에 있는 코테이너에 가서 고기나 구워 먹으면서 가뭄에 히달리고 있는 작물에 물이나 주고 오자고 약속을 했는데 약속한 지 10분도 채 지나가기 전에 마누라님에게 전화가 한 통 걸여 온다. 내용을 들어보니 우리 아들과 마누라님의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머니와 같이 노래방을 간단다.
아들이 노래방을 원래 좋아하니 그러라고 허락을 하고 혼자서 밭에가 이틀 전에 심은 고구마 밭에 스프링클러를 틀어 놓고 보니 내일 마누라님의 산행에다 다음 주 목요일 1박 2일 친묵회 모임으로 나간다는 마눌님 행위가 속을 뒤집어 놓는다. 혼자 아들을 챙길 생각을 하니 겁이 났나 보다. 이런 때는 산이 제일이지. 혼자 세상을 잃고 푸른 숲 속을 헤매다 보면 마음의 정화도 되고 운동도 되지 않나? 더구나 오늘 새벽에는 매일 걷는 새벽 걷기도 안 했으니 산이나 가자며 물 두병을 허리에 차고 성거산을 오른다.
성거산은 15년 전에 혼자 태조산에서 금북정맥을 따라 산행을 해보았다. 그때만 해도 나무도 그리 크지 않아 햇볕을 받으며 걸은 기억이 난다. 천흥저수지 뚝 남쪽 끝자락에서 어정어정 걸어 올라가는데 산행이 힘이 들지도 않고 숲이 우거져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오월의 아름다운 신록 산길을 ~
내 넋은 하늘에 내 던지고 한들한들 걷는 늙은이 산행에 이렇게도 좋을 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마누라님이 처제들과 함께 계룡산 가는 것이 못내 아쉬워 나도 봄산 한 번 타 봐야지 하면서 나선 산인데 코스가 너무 좋아 걷고 또 걸었다.
산행을 하는 도중에 수시로 젊은 산행인들을 만나게 되어 외롭지가 않고 3, 40대의 부부들인지 쌍쌍이 산행인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옆에다 이런 산을 두고 무리하게 새벽에 혼자 차를 몰고 지리산 이 골짝 저 골짝 헤매며 혹시나 곰이나 멧돼지를 만날까 겁을 먹는 산행을 하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광덕산도 좋지만 이제는 늙었나 숨 하나 차지 않는 성거산이 나에게 가정 적당한 산인 것 같다.
조금씩 조금씩 걷다 보니 한 시간 두 시간 네 시간이 넘게 걸었으며 핸드폰에 찍힌 만보기에 숫자가 산행한 시간만 체크해 보니 2만 3 천보가 넘게 찍혀 있다. 산이 나지막하고(성거산 정상 579m) 험하지 않은 능선으로 숲이 우거져 그늘로 되어 있으니 안성맞춤이었다. 천흥저수지 남쪽 끝자락에서 시작하여 금북정맥을 타고 성거산 정상을 올라 다시 외래산 쪽으로 길을 잡아 천주교 성지가 있는 곳에서 임도를 타고 다시 남쪽을 향해 한없이 오다 보면 만일사를 오르는 도로를 만나 내려와 보니 천흥저수지 물의 끝자락이었다.
오는 도중 처음 길이라 두 리번도 거렸고 생각보다 긴 산행이라 점심을 먹지 않은 탓에 배꼽풉도 있었지만 아들과 마누라님이 천흥저수지까지 차로 마중을 나와주는 고마움도 받은 산행이었다. 산 하면 그래도 지리산이나 덕유산 정도는 가야지 하던 지난날의 생각을 버리고 이제는 울적하면 성거산에 와서 너 댓 시간 산행을 하야지라고 다짐을 하면서 오늘 산행을 총 평가해 보았다.
"꿩대신 닭인 줄 알았더니 봉황이었네!"
큰 산만 산인 줄 알았는데 내 주변에 이렇게 멋진 산행 코스가 있는 줄은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천안 태조산에서 시작하여 금북정맥을 타고 성거산을 거쳐 위례산까지 걷는다면 아주 멋진 산행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혼자의 산행에 도취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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