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내가 사는 집
3일 전부터 오던 비는 오늘도 아침부터 구질구질하게 내렸다.
여름 장마철도 아니고 8월이면 가을의 문턱인데 왜 이리 날씨가 구질구질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아침부터 몸도 뻐근하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아마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고 계셔서 그런 모양이라며 마음을 달래며 출근했다.
어머니는 나이가 들면서 아프다고 하시던 무릎의 신경성 관절병이 다시 돋았나 이달 들어 너무나 고통스러워했다.
쩔뚝거리며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한 푼이라도 벌어보겠다고 시장통에 나가 좌판 장사를 하는 어머니가 안쓰러워 큰마음먹고 그동안 푼푼이 모아 온 돈으로 일주일 전에 수술해 들이려고 집에서 가까우면서 진료비가 저렴한 시립병원에 입원시켰다.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받은 지가 6일이 다 되었는데 수술받은 첫날만 언니와 우리 모녀 두 사람이 모두 병실에서 밤을 지새웠으나 그다음은 나는 직장 때문에 더 이상 병원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장애인이라 직업재활센터에 다니는 지적 발달장애인인 언니나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인 어린 딸에게 병간호를 부탁할 수도 없어, 없는 살림이지만 3일간만 간병인을 사용하고 그 후로는 어머니 혼자 간호해 주는 사람도 없이 입원하고 계신 지가 이틀이 지나가고 있었다.
내일은 마침 내가 근무하는 보험회사가 휴일이라 맛있는 음식이라도 조금 장만하여 언니와 딸과 같이 온 식구가 병문안을 가서 병원의 공원이나 아니면 휴게소에서 놀다 와야겠다고 단단히 마음먹고 있는데 아침부터 날씨가 얄밉도록 구질구질했다.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시장에 있는 식료품점에 들여 어머니가 좋아하는 전복죽이나 쑤어 드리려고 전복 한 봉지와 김밥 재료를 사고 오늘 저녁 찬거리로 언니와 딸이 좋아하는 오징어볶음을 해주자고 물오징어를 몇 마리 사서 가지고 오는 데 비가 억수 같이 퍼 붙었다.
언니와 딸은 저녁에 오징어볶음을 해준다니까 무척이나 좋아했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내일 병문안 갈 때 가져갈 전복죽을 끓이기 위하여 인터넷을 검색해 본 다음 전복을 손질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평소 생선을 손질해 본 경험이 별로 없다 보니 싱싱하면서 딱딱한 전복을 손질하기 위하여 껍질에서 전복살을 떼 내는데 전복이 싱싱해서 그런지 생각같이 전복이 껍질에서 잘 떨어지지 않아 그만 왼손 엄지손가락을 베고 말았다.
내가 주방에서
“아야~” 하고 비명을 지르자 선미는 깜짝 놀라 쫓아와 손 고락에서 피가 나는 것을 보고
“엄마 피~” 하면서 약상자를 찾으러 가고
언니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내 손을 가르치며
“어 피가 나네, 피~ 피~”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선미가 가져다준 약상자에서 밴드로 상처 부위를 감싸면서 생각하니 어쩐지 기분이 찜찜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고개를 흔들며 ‘조심해야지’ 하면서 다시 전복을 손질하기 시작하였다.
창문이라야 높이가 60cm 정도 되며 방범창이 설치된 문밖에는 장대같이 퍼붓는 비에 희미한 불빛마저도 가려져 어둠 깜깜해 보였으며 간혹 가다 비가 뿌리는지 아니면 바닥에 물이 뛰어오르는 것인지 거실 창문에 물방울 부닥치는 소리가 요란한데 내 귀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면역이 생겨서 그런지 무관심이었다.
이렇게 저녁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나 선미가 제방에서 나오더니
“엄마 나 숙제 다 했는데 이모와 같이 텔레비전 보면 안 될까?” 했다.
“벌써 숙제가 끝났어,
엄마도 얼른 저녁상을 차려 줄 테니까 그럼 이모가 좋아하는 예능프로를 같이 봐.”라고 대답했다.
언니는 태어날 때부터 다운증후군이라는 불치의 병을 가지고 태어난 지적 발달장애인이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노래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언니도 어려서부터 노래 듣는 것을 좋아했다.
더구나 코로나-19라는 신종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밖에 출입이 제한되어 답답할 때 「TV Chosun」이란 방송에서 ‘미스터 트로트’와 ‘미스 트로트’란 예능 프로그램을 신설하여 방영했는데 인기가 대단하였다.
평소 노래를 좋아하던 언니는 이 프로그램에 정신이 쏙 팔려 시간만 나면 듣고 또 듣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은 전 가족이 모두 트로트 가족이 되었으며 언니는 노래만 나오면 노랫소리에 맞춰 몸을 흔들면서 춤을 추는 것이 유일한 운동 중의 하나가 된 사람이었다.
거기에다 초등학교 4학년인 선미도 저이 이모와 같이 TV를 보면서 가수들의 흉내를 내며 춤을 추고 노는 것이 저녁때만 되면 우리 집의 유일한 낙으로 즐거움이요 행복이었다.
언니가 가지고 있는 다운증후군이란 병은 어떻게 된 것인지 난치성 희소병으로 나이를 먹고 교육해도 발전이 없는 늘 아이들과 같은 정신연령으로 살아가고 있는 병이다.
언니가 초등학교를 6년이나 다니고 특수학교도 6년이나 다녔으며 학교를 졸업한 후 다시 장애인 평생교육원을 5년이나 다녔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자기 손으로 밥을 먹고 신변을 처리하는 정도며 다른 것은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지능이 아주 낮은 사람이다.
다운증후군도 사람에 따라서 양호한 사람은 말도 곧잘 하고 자기 의사를 뚜렷하게 표현할 줄도 알고 글이나 숫자도 다 알아 간단한 일상적인 생활은 부담 없이 할 수 있다는데 금실이 언니는 지능이 특별히 낮은 것인지 대화가 잘되지 않았으며 말을 하면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서했다..
지금 나이가 40 중반이 되어가는 나이인데도 옷에다 종종 실수도 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혼자 밖으로 나가면 현관문의 열쇠 비밀번호를 제대로 누르지 못해 누가 열어주지 않으면 집으로 들어올 수 없는 사람으로 혼자는 절대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다.
다행인 것은 많은 다운증후군인 사람들이 심장병이나 자폐증과 같은 여러 가지 합병증을 가지고 태어나서 수시로 병원에 들랑거리며 살고 있다는데 금실이 언니는 약간의 자폐증세는 있으나 특이한 병이 없이 건강한 것만도 우리 가족은 천만다행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40이 넘은 나이이지만 지금도 그가 하는 일이란 낮에는 장애인활동지원사의 지원을 받아 아침에 장애인 직업재활센터에 가서 생활하다 저녁때 다시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집에 와서 나나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조카인 선미와 같이 놀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다 보니 그가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머니만 졸졸 따라다닌다든지 아니면 어머니 일에 사사건건 참견하거나, 또는 노래를 듣는다든지 아니면 인형을 가지고 어린아이 같이 소꿉장난하면서 노는 것이 전부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병원에서 1주일이 되도록 입원하고 있으니 언니는 죽을 맞인 모양이다.
툭하면 삐지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두고 선미와 다투며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선미는 억울하다는 듯 나한테 하소연하는데 난들 무슨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내가 선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선미야 네가 참아, 이모한테 그렇게 대들면 안 되잖아.” 하면 선미는
“엄마는 맨날 이모 편만 들어.” 하면서 뽀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제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 일 수다.
오늘은 저녁 반찬으로 오징어볶음을 해준다고 하니 언니나 선미는 기분이 쾌나 좋은 모양이다.
더구나 내일 김밥을 준비해서 어머니 병문안을 간다고 했더니 더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정신없이 전복을 깨끗이 손질하여 냉장고에 넣고 전기밥솥에 쌀을 안치고 오징어볶음을 하는데 정신을 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