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에서는 어느 방송인지 모르지만 ‘사랑의 콜센터’라면서 남자 가수와 여자 가수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노래 대결을 하는 데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나의 귀에도 저절로 흥이 돋았다.
어쩌면 그리도 노래를 잘할까?
어머니도 없이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는데 고작 14살 먹은 중학교 22학년 짜리가 어른들 못지않게 감정을 잡으며 노래하는데 박자나 음정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가 없이 노래를 잘 불러 듣는 사람이 저절로 흥이나 흥얼흥얼 따라 하게 했다.
언니와 선미는 즐거워하며 가수들의 흉내를 내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아마 이런 시간이 쾌나 흘러간 것 같은데 춤을 추고 있던 선미가 갑자기
“엄마 현관에서 물이 들어와” 하면서 호들갑을 떤다.
나는 무슨 물이 들어올까? 생각하면서 눈길도 주지 않고 혹시 퇴근할 때 쓰고 들어 온 우산의 물방울이 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프라이팬에 볶고 있던 오징어볶음을 계속 볶으면서
“걸레 찾아다 닦으면 되지.” 하며 예사롭지 않게 대답했다.
“응, 걸레 어디 있어?”
“걸레가 안 보이면 욕실에 있는 수건을 가져다 닦아,”라고 대답하자 선미는 화장실로 동동 거름 친다.
나는 그때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금실이 언니가
“물, 물.” 하면서 요란을 떨어 현관문 쪽을 바라보니 현관문 안쪽 신발을 벗어 놓는 곳에 물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때야 정신이 번쩍 들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생각하며 달려가 보니 현관문 밖에서 무엇이 현관문에 부닥치는 소리가 쿵 쿵 거리고, 문틈으로 물이 물총으로 쏘는 것같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이게 웬일일까?’
어안이 벙벙하며 눈이 휘둥그레 한 채 서 있는데 문틈으로 들어오는 물의 높이가 순식간에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당황하여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 일단 밖의 상황을 살펴보자고 현관문을 열라고 하자 현관문은 까딱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미야 엄마 좀 도와줘.” 하면서 선미의 도움을 받으며 밀어 보았지만 역시 문은 까닭도 하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있던 언니도 다급했는지 같이 와 문을 밀자 현관문이 조금 움직이는 듯하더니 도로 닫쳤다.
순식간에 물의 높이가 현관문의 반도 넘게 차오른 모양이다.
오히려 현관문이 조금 열리는 듯, 할 때 그 틈새로 물이 왕창 쏟아져 들어와 순간에 거실로 물이 올라왔다.
갑자기 정신이 멍해졌다.
우리 집은 반지하주택으로 현관문이 지상에서 계단을 타고 7계단을 내려와야 있다.
현관문을 들어서면 신발장과 신발을 벗어 놓는 작은 공간이 있고 바로 거실과 주방으로 연결되어 있다.
거실로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계단이 한 칸 있는데 그 계단을 올라서 문을 열면 칸막이가 있고,
칸막이 한쪽은 각종 살림살이를 넣어두는 창고요 또 한쪽은 화장실 겸 세탁실로 간단한 샤워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제법 넓은 공간이 있다.
그런가 하면 주방 겸 거실 앞에는 방이 두 칸 있는데 첫 번째 방은 나와 선미가 생활하고 있었으며 두 번째 방은 엄마와 금실이 언니가 사용하고 있다.
거실은 제법 넓었으며 현관 쪽 벽면에 옷가지를 넣어 두는 3칸짜리 장식장이 놓여 있고 그 위에는 각종 액세서리의 인형과 살림 도구가 놓여 있다. 그리고 장식장 위쪽 벽에 조그마한 벽걸이 텔레비전이 걸려있다.
텔레비전이 걸려있는 위쪽 벽에 가족사진의 액자가 3개가 걸려있는데 가운데는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찍은 어머니와 언니 그리고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이 있는 사진이 걸려있고 오른쪽은 지난봄에 가족 나들이로 한강공원에 놀러 갔을 때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
그리고 왼쪽은 귀여운 모습을 한 선미의 돌 사진이 걸려있다.
이러다 보니 우리 집은 밖의 빛이 거의 차단된 집이었다.
창밖의 빛은 남쪽 거실 쪽으로 나 있는 내 눈높이 정도 높이에 60cm 정도 되는 창틀이 2개 있고 방 쪽도 역시 같은 높이에 방마다 하나씩 창틀이 박혀 있는 반지하주택이다.
남쪽 창문 밖에는 조그마한 화단이 길게 늘어져 있으며 그곳에는 꽃나무들이 심겨 있어 좁은 공간의 빛마저 가리고 있었으며 창문은 거의 열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창문밖에는 두께가 4cm가 넘는 철근으로 방범창이 설치되어 창문을 가리고 있었다.
우리는 가능한 밖에서 거실을 내려다볼 수 없게 아름다운 꽃무늬 천으로 커튼을 만들어 쳐놓아 커튼을 열기 전에는 밖의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게 되어 있었다.
북쪽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각 방이나 창고에 환기창 겸 창문을 하나씩 내 눈높이 정도의 높이에 넓이는 1.5m, 높이 60cm 정도 창틀이 하나씩 설치되어 있으며 그곳도 방범창이 남쪽과 같이 튼튼하게 설치되어 있다.
북쪽 방이 있는 쪽 창밖은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4m 정도 넓이의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는 도로로 비스듬한 경사면으로 되어 있었으며 그 옆은 다른 빌라의 벽이 있다.
우리 집은 빌라에 있는 반지하주택인데 원래 지하 주택이 여섯 채가 있었는데 다섯 채는 개조 하여 지하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고 반지하주택은 우리 집 한 채뿐이다.
그러다 보니 방 밖에 있는 벽이 창문과 20cm 정도 공간이 있지만 주차장으로 들랑거리는 입구다 보니 자동차 소리나 불빛을 차단하기 위하여 창문 안쪽에다 틈새가 없이 비닐 테프로 붙여 놓았으며 이를 다시 커튼으로 가려 언 듯 보기에는 아름다운 커튼이 처진 벽으로만 느껴 젖으며 밖의 풍경은 전혀 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우리 집 방범창이 튼튼하게 설치된 이유는 가난한 서민과 빈민들이 사는 마을이라 도난이 심하여 다른 곳보다도 유난히 단단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특히 우리 집은 여자들만 네 사람이 사는 집으로 노인과 장애인 그리고 어린 여자아이가 있어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집을 고르는데 튼튼한 방범창을 보고 선택했었다.
그러다 보니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사람만 집에 들어오면 늘 환풍기를 틀어 놓고 내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거실 입구에 놓여 있는 가습기를 비우는 일이 첫 번째 하는 일이다.
오늘도 퇴근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선미한테 가습기를 비워 달라고 부탁한 것이 제일 먼저였다.
더구나 요즘같이 장마철에는 습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렇게 관리를 철저히 해도 조금만 방심하면 옷에서 습습한 냄새가 나 보험회사에서 설계사로 일하는 나에게는 치명적일 수가 있다.
어디 그것이 나뿐이겠는가?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선미에게도 잘못하면 친구들로부터 냄새가 나는 아이라고 따돌림을 당할 수 있고 언니는 언니대로 사람들로부터 지저분하다고 외면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이런 것을 알고 있는 늙으신 어머니도 특별히 환기에 관심을 쓰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매일 아침 일어나면 출근하기 전에 가족들 옷을 선풍기 바람으로 말린 다음 다리미질을 하는 것이 나의 일과 중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되었다.
이렇게 말하기는 쉬워 보이지만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면서 낮에는 보험회사에서 손님들의 기분을 맞추며 보험설계를 하면서 상품을 판매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험상품을 하나 판매하려면 손님들 각자가 개성과 인품이 달라 그들의 비위가 틀어지지 않게 신경을 쓰면서 보험이 마음에 쏙 들게 설명하려면 보통 눈치와 말솜씨로는 손님을 유혹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이 직업에 뛰어든 것도 벌써 10년이 넘어가다 보니 이제는 제법 이골이 나 회사에서 제법 인정받는 위치까지 오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겉으로는 속없이 상냥한 얼굴을 하고 있으나 속은 늘 긴장의 연속으로 집으로 돌아올 때는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로 돌아오기가 일쑤였다.
어머니는 딸이 늦게 집에 들어와서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가족들 옷을 챙기는 것이 마음이 아픈 것인지 아침 식사 준비는 물론 옷을 손질하는데 자기 옷과 언니 옷은 자기가 챙기겠다고 하시면서, 나보고 내 옷과 선미 옷만 챙기라고 하는 데 딸로서 마음이 편하지 못해 가능하면 내가 하곤 했다.
사실 내가 출근하고 나서 빨래나 청소를 어머니가 해주지 않는다면 이 정도로 깨끗하게 살림을 꾸리고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이 집으로 이사 온 지가 근 5년이 가까워지는데 나는 이런 지하에 사는 것이 어린 딸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아 늘 안쓰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혹시 선미가 친구들로부터 지하에 산다고 놀림이나 받지 않을까? 가슴 조아리고 있었으며 늙은 어머니에게도 미안하였다.
그래서 조금 더 변두리라도 햇볕이 드는 집으로 이사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