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에 걸려있는 시계는 아버지가 수산협동조합의 모범 조합원이라고 하여 받은 상이 었다..
이 시계를 어머니는 우리 집 가보처럼 생각하며 귀중하게 챙겨 왔다..
하긴 어떻게 보면 귀한 물건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았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저 시계를 보고 바닷물이 들어가고 나갈 시간을 알았을 것이고 어머니도 저 시계를 보면서 언니나 내가 학교 갈 시간에 맞추어 밥을 해 주었을 것 같았다.
그런가 하면 나에게도 얼마나 소중했던 시계인가?
학교에 가고 잠자는 시간을 저 시계에 맞춰 지키지 않았던가? 하면서 생각하니 지금쯤 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면 우리 집은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공상에 사로잡혔다.
아버지가 살아계시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아버지가 학용품도 사다 주고 예쁜 토끼 인형도 사다 준 기억이 있는데 하는 생각을 하자
어렸을 때 보았던 아버지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가무잡잡하면서 건강한 모습이 눈앞을 스쳐 가는데 그런 건강했던 사람이 왜 그리 갑자기 가셨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의 복이 그것뿐이라 그랬을까?
아니면 어머니의 팔자가 혼자 살라는 팔자라 그랬을까?
그렇지 않으면 내가 복이 없어서 아버지와 같이 살 팔자가 못되어서 그런 것인가? 하는 헛된 공상이 머리를 스쳐 간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시골에서 살다 서울에 이사 와서 보니 대부분 내 또래 아이들은 아버지의 차를 타고 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며 쉬는 날에는 가족들과 함께 공원에 여행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가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부러웠던가?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선미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다시 내 어렸을 때 추억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어렸을 때 시흥의 바닷가에서 자랐다.
그때만 해도 아버지의 고향이면서 내가 태어나 자란 고향은 시흥의 바닷가로 갯벌이 어마어마하게 넓은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여름만 되면 오후에 친구들과 같이 갯벌에 나가 조개를 캐며 놀던 추억이 가득했다.
어느 날인가는 나도 모르게 친구와 조개를 캐다가 옆집에 사는 미숙이랑 싸움을 한바탕 한 기억이 떠올랐다.
친구들과 여럿이 조개를 캐러 가서 내가 열심히 갯벌에 호미질하는 데 옆에서 보고 있던 미숙이가 내가 캔 커다란 키조개를 잽싸게 자기 그릇에다 주워 담았다.
순간 나는 화가 나서
“그건 내가 캔 조개야.” 하면서 미숙이의 조개 바구니를 채 트리자 미숙이가 캔 조개가 갯벌로 쏟아졌다.
그러자 미숙이도
“아냐 그것은 내가 먼저 본 거야.” 하면서 주지 않으려고 해서 둘이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운 기억이 떠올랐다.
그까짓 키조개 한 마리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갯벌에다 옷을 다 버려가며 머리채를 잡고 싸웠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희미한 불빛 속에서 내가 웃은 모습을 언니와 선미가 본 모양이다.
나이는 40 중반이 되어가는 언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은실아 왜, 웃어,
누가 우릴 구해 주로 온대.” 하면서 기대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고
선미도
“엄마 왜 웃어.” 하며 눈을 동글동글하게 뜨고 바라보고 있다.
나는 깜짝 놀라며
“아냐, 아무것도.”라고 대답하면서 나 자신이 생각해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분간이 가지 않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한편으로는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자 문득 머릿속에 이 어려움을 이겨 나가려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면 시간이 잘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언니와 선미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언니 무섭고 시간이 안 가지?” 하자
“응, 그래, 무섭고 힘들어.” 한다.
“선미는?”
“응, 나도 무섭고 힘들어.”라고 대답했다.
“그럼 무섭지 않으면서 시간이 빨리 가는 방법을 써 볼까?”
“엄마, 그런 방법이 있어. 어떤 방법인데?”
그러자 언니도
“은실아 나도 가르쳐 줘.” 하며 두 사람은 호기심을 갖는다.
내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뜸을 들이자 언니가 다시
“빨리 가르쳐 줘. 나 힘들어 죽겠어.” 하며 뿌루퉁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특별한 방법이나 있는 것처럼 뜸을 들이다
“둘 다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한번 해 봐.” 하자 생각이 단순한 언니는 근방 밖으로 나갈 방법이라도 말할 줄 알았나
“그래, 꼭 그렇게 할게, 빨리 말해 봐.” 하며 재촉했다.
“사실은 시간이 빨리 가게 하려면 옛날에 있었던 일 중에 재미있고 즐거웠던 일을 생각해 보는 거야.”
“재미있고 즐거웠던 일?”하고 되물어 온다.
“선미도 알아들었어.” 하자 선미는
“응 눈을 감고 옛날에 재미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라는 거지.” 하며 제법 알아듣는 체한다.
그러자 언니는
“눈을 감고?” 하면서 반문하는 것이, 아직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언니 우리 지난번 봄에 관악산으로 벚꽃 놀이 갔었지.”
“그래, 엄마와 선미와 너랑 갔잖아.
그때 거기서 사 먹은 아이스크림이 맛있었는데.” 하며 빙긋이 웃는다.
“언니, 어때, 그때를 생각하니까 무섭지 않지.” 하자
“응, 그래, 무섭지 않아.”
“그럼, 선미와 같이 눈을 감고 엄마랑 여행 갔었던 일들을 생각해 봐.” 하면서 지금 내가 하는 것이 잘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언니는 눈을 감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빙그레 웃더니
“은실아 나 지금 엄마랑 아버지 산소 갔을 때 생각하고 있다.”
“아버지 산소.”
“응, 그래 아버지 산소, 엄마랑 너랑 버스 타고 갔잖아.”
언니는 생각이 없는 줄 알았더니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가 아버지 산소를 찾아간 것은 근 13년이 지난 것 같은데 그걸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아버지 산소를 잘 가지 않았다.
두 딸을 데리고 객지에서 살아가는 것이 바빠서 그랬는지? 아니면 산소에 찾아가면 더 그리워져서 빨리 잊기 위해서 그랬는지
산소에 간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러던 어머니가 내가 결혼한다고 하자 좋아서 그랬나 나와 언니를 데리고 아버지 산소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 산소에 찾아간 것은 내가 시집을 간다고 아버지에게 인사하러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머니가 죽은 자기 남편한테 당신 딸을 나 혼자 키웠어도 이렇게 예쁘게 성장하여 멋진 남자한테 시집간다고 자랑하기 위해서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찾아간 아버지 산소는 시흥에 있는 해변 야산에 있었다.
묘지는 관리가 되지 않아 풀 속에 있었다.
풀 속에다 가지고 온 꽃다발을 세워놓고 절을 하던 나는, 아버지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아들이 있었다면 묘지가 이렇게 풀밭이 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했었으면서도 딸이라 그런지 아버지와 정이 없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결혼 후에 아버지 산소를 한 번도 간 적이 없고, 다녀온 기억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