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붉은 주마등 12

日陵 2025. 10. 13. 14:56

 

 

5. 살기 위한 몸부림

 

 

양쪽 손을 머플러로 묶은 우리는 또다시 무한정으로 집안의 온갖 쓰레기가 둥둥 떠 있는 물속에 갇힌 채 식탁과 싱크대로 만든 거치대 위에 앉아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멍하니 언니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자니 선미가 옆에 있어서 그런지 언니와 나와의 어렸을 때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같이 머릿속을 헤집고 떠 오른다.

 

언니와 나는 어떤 인연에서 만난 것일까?

중학교 때 시골에서 신림동으로 이사 와서 얼마 되지 않은 여름 어느 일요일 날 어머니와 나 그리고 언니는 호암산 자락에 있는 호암사로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호암사의 오른쪽에 있는 계곡에서 세 모녀가 발을 물에 담그고 앉아 있는데 그때 마침 그곳을 지나가고 있던 스님이 우리를 보더니 말을 걸어왔다.

스님은 나이가 지긋한 여자분인데 남루한 옷차림의 젊은 여자가 아직 어려 보이는 두 딸을 데리고 물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 보기가 좋았나 어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두 손을 합장하고 공손하게 [[ 머리를 숙이며

시주님을 어데서 오셨나요.” 하자 젊은 어머니는 멋쩍었던지 얼른 일어나 같이 합장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면서

, 저희는 이 아래 사는 주민으로 이곳에 이사 온 지가 얼마 되지 않아 지리도 익히기 겸 산책을 나왔습니다.” 하자

~ 그러시구먼요. 세 사람이 하도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행복하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말을 걸어 보았네요.” 한다.

 

그러자 어머니는

자기 옆자리에 넓은 돌을 하나 주서다 노면서

스님도 바쁘지 않으시면 시원한 개울의 그늘에서 쉬었다 가시지요.” 하자.

스님은 맑은 미소를 지으며

그래도 되겠오.” 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인연이 되어 알게 된 스님은 언니가 불치의 병을 가지고 있는 장애인이란 것을 알고 희망을 주려는 의미에서 이야기해 주었는지 인간의 고뇌와 인연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다.

나는 감수성이 예민한 여중 학생이라 그런 것인지 금실이 언니의 장애에 대한 갈등이 많아서 그랬는지 스님의 말씀 중 인간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었다.

 

스님은

인연이란 윤회를 나타내는 말로 불교에서는 인과응보설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다.

즉 모든 사물은 ’’ 인과의 법칙에 의해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불교에서는 삼시 업이라 하여 업을 세 시기로 나누어 순 현업, 순 생업, 순 후엽으로 구분하는데

순 현업은 현생에서 죄를 짓고 현생에서 벌을 받는 것이고,

순 생업은 전생에서 죄를 짓고 현생에서 벌을 받거나 현생에서 죄를 짓고 내생에서 복을 받는 것이며,

순 후엽은 여러 생에 걸쳐서 벌을 받는 것이라고 설명해 줬다.’

 

그러면서 성철스님의 인과의 법칙 이야기라며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이 우주의 원칙으로 나의 모든 결과는 모두 나의 노력 여하에 따라 결과를 맺는다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 금실이 언니가 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은 전생에서 죄를 지어 벌을 받는 것인지 아니면 내생에서 복을 받기 위하여 현생에서 장애인이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걱정하지 말고 자연의 순리대로 살라고 위로해 주었다.

그러면서 이런 딸을 만난 것도 다 어머니의 인과응보에서 온 것이니 거부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에게도 금실이 같은 언니를 만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언니에게 잘해주면 잘해준 만큼 그 복은 꼭 현세에서나 아니면 내세에서 받게 되니 언니를 만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행복하게 살라고 당부했다.

 

사실 우리가 서울로 이사 오게 된 동기는 모두 언니를 위해서였다.

 

아버지가 갑자기 병으로 일찍 돌아가시자 막내아들을 자기보다 일찍 보낸 할머니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것이, 어머니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할머니는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나 보다.

 

언니와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다음 해에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우리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로 진학하려 하는데 할머니는 계집애들을 뭐 하러 중학교까지 보내냐면 반대했단다.

그때 어머니와 할머니는 우리 진학 문제로 심하게 다투신 모양이다.

할머니는 저희 아비도 없고 돈도 없으면서 계집애들을 무슨 중학교까지 보내냐며 못 보내게 하자 어머니는 내 자식 내가 벌어서 가르칠 테니 어머니는 상관하지 말라면서 심하게 다투셨단다.

 

중학교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버스를 타고 한참이나 가야 했다.

할머니도 반대하고 학교도 멀리 떨어져서 그랬는지 아니면 나와 같이 중학교에 보내면 장애인인 언니와 함께 학교에 다니는 나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미안해서 보내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언니를 중학교에 보내지 않고 나만 중학교를 보내줬다.

 

그러나 어머니는 언니를 중학교에 보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와중에 서울 관악구 신림동 시장통에서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며 살고 있던 어머니 동생인 이모가 신림동에 장애인이 다닐 수 있는 특수학교가 새로 생겼다며 이곳으로 이사와 금실이 언니를 학교에 보내면 어떠냐는 제안이 들어왔단다..

 

어머니는 언니를 어떡해서라도 학교에 보내고 싶은데 우리 지방에는 보낼만한 특수학교가 없어 고민하고 있을 때 언니가 다닐 수 있는 특수학교가 있다고 하자 무척이나 반가웠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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