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붉은 주마등 16

日陵 2025. 10. 23. 07:19

복수초(얼음새 꽃)

 

6. 이룰 수 없는 사랑

 

 

우리는 제일 안쪽 창가에 내가 서 있고 그다음은 선미 그리고 금실이 언니가 거실 쪽에 서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선미와 내가 서로 맛봐라 보고 서 있는 꼴이 된 것이다.

이제는 빛이라고는 물에 가리지 않은 창틀 위쪽 20cm 넓이에서 빗물 방울이 튀겨있는 사이로 희미하게 들어오는 것뿐이다.

 

눈이란 참 신기하게 생긴 모양이다.

이렇게 약한 빛이지만 계속 어둠 속에 갇혀 있어서 그런지 사물들의 형체를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대충 윤곽만은 알 수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로 가려진 선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원수 같은 선미 아빠 얼굴이 떠오른다.

 

그 원수를 만나게 된 것은 직장에서 만나게 되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하고 어머니를 돕기 위하여 취업했었다.

나는 어머니를 닮아서 그런지 여자로서는 키도 제법 큰 편이었으며 피부도 곱고 얼굴도 예쁘장하게 생긴데 다 몸매도 남에게 처지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이런 외모 조건 때문인지 졸업할 당시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미인 화장품이란 회사에서 사원을 모집하겠다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할 학생이 있으면 네 사람만 추천해 달라고 학교에 추천 의뢰가 왔다.

 

그러자 3학년 학년 부장 선생님은 3학년 담임 회의를 했는데 나의 가정 사정을 잘 알고 있던 담임 선생님이 강력히 추천하여 네 명의 학생 중에 나도 한자리 추천을 받을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네 명의 학생이 추천받았지만, 막상 회사에 가서 보니 네 명의 학생 중에서 서류 심사와 면접을 거친 다음 최종 합격자는 두 사람만 뽑았는데 그중 한자리에 내가 합격한 것이다.

 

나의 학교생활은 초등학교 때에는 몸이 뚱뚱하고 얼굴 모양이 일반 사람과 조금 다른 외모를 가진 금실이 언니와 늘 같이 학교에 다니다 보니 어린 마음에 창피하다는 열등감 속에 살아온 것 같았으나 학교 성적은 우수한 편에 들었다.

그러다 서울로 이사와 언니는 특수학교에 다니고 나는 일반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부터 언니로부터 알게 모르게 받고 있던 심적 부담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어서 그랬는지 학교생활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다른 친구들보다 힘이 세고 억척이었던 모양이다.

비록 옷은 남루하게 입고 다녔지만, 체육대회 때 늘 우리 학급 대표 선수로 달리기나 피구 선수를 했으며 누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앞에 나서서 곧잘 해결해 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나를 좋아하는 친구도 쾌나 있었다.

이런 나는 어머니가 시장에서 장사하시기 때문에 늘 학교가 끝나는 즉시 집으로 돌아와 언니를 보살펴 주었으며 간단한 청소나 빨래 등 어머니의 일손을 어려서부터 도와주어야 했다.

 

그러다 앞에서 이야기 한 대로 중학교 2학년 때 가정환경에 갈등을 느껴 가출하려고까지 했으나 집 없는 소년이란 책을 읽고 마음을 잡았으며 나도 그 주인공같이 열심히 살아보자고 어린 마음인데도 다짐하면서 어머니를 도우며 학교에 다녔다.

 

그래서 그런지 가난한 집 학생이었지만 학교 성적이 우등생은 못 되었어도 중상위 정도는 늘 유지하고 있는 착한 학생이었다.

매년 바뀌는 담임 선생님이었지만 이런 나를 선생님들은 모두 착하고 성실한 학생이라고 선행상도 주고 효행상도 추천해 주는 등 예뻐해 주셔서 별 탈 없이 고등학교까지 무난히 졸업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학교 성적도 양호하고 외모도 예쁘장하게 생겨서 그랬는지 학교에서 네 사람이 추천받아 회사에 지원했는데 최종 합격자 두 사람 중 내가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나보다 공부를 못했던 고등학교 동창생들이 대부분 대학으로 진학했는데 나는 대학에 원서조차 내 보지 못했지만, 회사의 취업 통지서를 받았을 때 그 기쁨은 하늘이라도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마음속으로 대학 진학은 내가 손수 돈을 벌어 방송통신대학이나 아니면 야간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우선 생활이 어려운 어머니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기뻤다.

 

취업 통지서를 받아 오던 날 저녁에 어머니는 통지서를 펼쳐 보면서 눈에 눈물이 고였던 모습은 지금도 내 눈에 선하게 나타났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나타나자 흙탕물이 가슴까지 올라와 있는데도 나도 모르게 행복의 미소가 흘러나왔다.

 

내가 선미 아빠를 만나게 된 곳은 이렇게 들어간 미인 화장품회사에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 내가 맡은 일은 외모가 깔끔하고 예쁘장해서 그런지 외판원 업무를 맡겼다.

처음 회사에 들어가 메이크업을 배우고 나서 스스로 메이크업을 한 내 얼굴을 내가 바라봐도 학교 다닐 때와는 완전 다른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해 있었다.

 

더구나 어머니의 손 맵시를 닮아서 그런지 같이 입사한 친구들보다 내가 화장하는 솜씨가 뛰어나 손님들로부터 인기가 좋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지점 회사원보다 영업실적이 좋아 수입도 제법 많아졌으며 지금까지 우리 가정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라 정부지원금을 받으며 근근이 꾸려가던 우리 가정도 조금씩 생활의 여유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처음에 시장 귀퉁이에 있는 이모네 식당 옆에서 혼자 좌판을 펴놓고 채소를 팔았으나 세월이 가면서 시장 사람들을 조금씩 알게 되자 부담스러운 이모네 식당 옆을 떠나 다른 채소 상과 같이 시장통에서 좌판을 표 놓고 장사를 했다.

어머니는 나름대로 열심히 장사했지만, 언니와 나를 돌보면서 장사를 하다 보니 우리 집은 매월 내는 집세와 내 학비는 그만두고 생활비가 부족하여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내가 학교를 졸업해서 학비가 들어가지 않는 데다 오히려 돈을 벌어오니 서울에 와서 처음으로 조금씩 저축도 하는 가정으로 변해갔다.

 

그동안 찌들었던 어머니의 얼굴이 조금씩 밝아 젖으며 자기뿐이 모르는 금실이 언니도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다.

거기다 내가 화장품회사에서 메이크업에 종사하다 보니 우리 집은 여자들만 사는 집으로 화장품이 풍족했으며 시간이 나는 대로 어머니와 언니의 얼굴에도 화장해 주다 보니 피부도 점점 고와지고 시골티를 조금씩 벗어나는 것같이 보였다.

그리고 열심히 저축한 돈으로 집도 조금 나은 곳으로 이사를 했으며 봄이나 가을에 옆에 있는 관악산 계곡에도 자주 나갈 수 있는 형편이 되었다.

이런 때 내가 선미 아빠를 만나게 된 것이다.

 

선미 아빠는 본사에 다니는 직원으로 제법 이름있는 대학을 나와 본사에서 활동이 많은 사람으로 알려 젖는데 어느 날 우연이 내가 근무하는 신림동 지점에 출장 나왔었다.

그때 지점장의 소개로 서로 알게 된 사이였는데 그는 한눈에 내 미모에 반해버린 모양이다.

처음 소개받은 후 얼마 안 있다 데이트 신청이 들어와 몇 차례 만나 데이트했는데 그러는 사이 서로 정이 들게 되었다.

 

그와 나는 주말이면 한강공원에 가서 유람선도 타고 관악산도 등산하면서 사랑을 속삭였다.

그러다 4월 벚꽃이 만발한 어느 날 남산을 구경하고 날이 저물어 가는데 그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야간 덕수궁 풍경이 아름답다며 구경하기를 권하였다.

나도 아직 야간의 덕수궁을 구경한 적이 없어 흔쾌히 승낙했다.

 

그와 나는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대한문을 통해 궁궐에 들어간 후 녹음이 파릇파릇 돋아서 나는 숲길을 따라 아름다운 조명이 비치는 경내를 한 바퀴 돈은 다음 석조전 앞에 있는 분수대 옆 숲에 있는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벤치에 앉아 아름다운 조명 속에 뿜어내는 분수의 아름다움에 넋을 놓고 있는데 그는 나에게 덕수궁에 대하여 설명해 줬다.

아마 사전에 준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간단간단하면서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줬다.

그 사람이 이야기해 준 내용을 정리해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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