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붉은 주마등 19

日陵 2025. 11. 1. 20:39

분꽃

 

그 순간 나는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가슴이 뭉클했다.

혹시 내가 우리 선미한테 죄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의 가책을 느낀 것이다.

누구보다도 부모와 친족의 정을 그리워하며 살아온 내가 아닌가? 그런데 내가 난 내 딸을 내 손으로 직접 키우지 않고 외롭고 힘들게 사는 어머니한테 맡기고 있는 것이 죄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어머니와 언니는 장애인 모녀가정으로 기초생활 수급자로 선정되어 국가에서 주는 기초생활 수급자 생계급여와 언니의 장애인 연금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인데, 쉽게 말해 최저생계비로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인데 거기에 시집간 딸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기 딸을 맡기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어머니나 언니가 받는 급여나 연금은 집세와 각종 공과금을 내고 나면 생활이 빠듯한 듯하여 우리는 선미를 돌봐 준다는 핑계로 매달 몇 푼씩 어머니에게 용돈으로 드리곤 했는데 그 돈 몇 푼 드리는 것이 큰 효도고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선미 아빠도 처음에는 젊은 혈기로 내 미모에 빠져 사랑을 고백하고 자기 부모가 극구 반대하는데도 결혼까지 했다.

그리고 나와 결혼하기 위해서 사탕발림 소리로 했는지 모르지만, 자기는 큰아들이 아니니까 시부모는 형님이 모시고 자기는 장모님을 모시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는데 살면서 보니 세상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모양이다.

 

다른 친구들과 같이 자기 아내가 대학을 나온 여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이 많은 부잣집의 딸도 아니다.

어쩌다 처가 집이라고 찾아가면 혼자 사는 장모와 지적 발달장애인인 처형뿐이 없으니 누구랑 재미있는 이야기 한번 나눠 볼 수 있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처가에 정이 있을 리 없을 것 같았다.

 

아마 이런 것들이 싸이고 싸여서 남편은 불만이 커진 모양이다.

처음에는 내 미모에 반해 젊은 혈기로 앞뒤를 가리지 않고 결혼했는데 살아가면서 보니 자기 친구들의 부인이나 처가와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는 것을 깨달았나 나에게 짜증 내는 일이 점점 많아져 갔다.

거기다 부모는 만날 때마다 아들 하나 더 낳으라고 조르는데 나는 아이 낳기를 반대하니 중간에서 스트레스가 더 쌓인 모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갈등을 느끼고 있는데 회사에서 남편에게 중국으로 파견 근무를 나가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나는 남편을 따라 중국으로 가면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고 또 무릎 관절이 안 좋아 고생하시는 늙은 어머니가 장애인 언니와 살고 있는데 해외로 나간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그래서 해외에 나가는 것을 반대하자 남편은 이에 불만을 품고 있나 술 마시는 일이 많아지고 지방 출장이라며 전에 없었던 외박도 더러 나타났다.

그러다 보니 없었던 부부싸움이 점점 늘어나 결국 헤어지기로 합의하여 5년 전에 합의 이혼했다.

남편은 이혼하자마자 중국의 해외 지사로 혼자 파견 근무를 자청해서 나갔는데 그 후 소식은 알 수가 없다.

 

사실 나는 결혼 후 바로 직장을 옮겨갔다.

그 이유는 우리가 같은 회사 직원끼리 결혼하자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 나를 미모로 남자나 꼬시는 여자라고 소문이 나, 뒤에서 내 흉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혼한 후 얼마 안 있다 지금까지 다니던 화장품회사를 그만두고 능력만 좋으면 얼마든지 보수를 더 올릴 수 있는 보험회사 설계사로 직장을 옮겨 보험회사에서 설계사 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나름대로 수입이 많아져 우리가 살을 만큼은 벌고 있었다.

 

우리가 이혼할 때 선미는 아직 어려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었다.

나는 어린 선미가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어려서부터 할머니랑 살아서 그런지 별 탈 없이 잘 넘어갔다.

이혼할 당시 나는 아버지 없이 자란 사람이라 선미에게도 그런 상처를 줄까 봐 이혼을 망설이기도 했지만, 그 사람이 하는 행위가 나에게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그 사람은 자기 부모나 형제들이 반대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하나뿐인 자기 딸에 대한 사랑이 별로 없었다.

아기 때부터 외갓집에서 장애인인 이모와 할머니 밑에서 자라고 있었는데 정이 없어서 그랬는지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러 가지도 않았고 어쩌다 우리가 사는 집으로 아이를 데리고 오면 은근히 빨리 가기를 원하는 눈치를 보여 자주 데리고 올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혼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어느 날 술이 잔뜩 취해서 들어왔는데 옷에서 짓은 여자의 화장품 냄새가 풍겼으며 그날 잠꼬대에 두 번이나

미나야~ 걱정하지 마, 내가 곧 이혼할 테니까?” 하며 잠꼬대했다.

그러지 않아도 회사 일이 바쁘다고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아지고 지방 출장이라며 외박하는 일이 빈번했는데 분명 무엇이 있다는 생각이 여자의 직감으로 느끼곤 했다.

그래서 미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연한 자리에서 미나라는 사람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날 대학 친구들과 우리 집 근방에서 모임을 했다며 술이 한잔 거나한 채 우리 집에서 차나 한잔 마신다며 친구 세 사람을 데리고 왔다.

나는 술에서 깨라고 차대신 꿀물을 한 잔씩 진하게 타 줬다.

그때 용기를 내서 미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그 사람이 화장실에 갔을 때 나는 웃으면서

어찌 미나라는 분은 같이 안 오셨네요?” 하고 지나가는 말로 건들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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