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랬더니 친구 한 사람이 술에 취해서 그랬는지 덥석 걸려들었다.
그는 혀가 살짝 꼬부라진 소리로 눈을 동그랄 게 뜨고
“아니 제수씨가 어떻게 미나를 알아요?” 한다. 나는 시치미를 띄고
“왜요. 그 사람이 종종 이야기하는데요.” 하며 웃자
옆에 있던 사람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둘이 대학 다닐 때 쾌 친하게 지냈는데.” 하다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는 사이 그 사람이 화장실에서 나와 미나라는 사람의 이야기는 더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미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알게 되자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점점 식어가게 되었다.
그 후 나는 미나라는 사람을 더 깊게 알아보니 그녀는 그이와 대학 때 캠퍼스 연인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남편이 나와 결혼하자 헤어졌는데 지금까지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미나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지만, 시치미를 떼고 살고 있는데 사월 어느 날 벚꽃 놀이라도 가는지 지방으로 2박 3일간 출장을 간다고 나보고 출장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래서 의심이 들어 단단히 마음먹고 시치미를 띠면서
“미나 씨랑 같이 가는 거야?” 하자 그는 화들짝 놀라며
“뭐~, 당신이 미나를 어떻게 알아.” 했다.
나는 여기서 단판을 저야겠다는 생각에
“왜 몰라, 당신 대학 때 캠퍼스 연인으로 다 소문이 나 있던데.” 하자 그도 이때다 싶었는지
“뭐야, 지금 나랑 한번 해보자는 거야” 하며 화를 냈다.
나도 조금도 물러섬이 없이
“뭘 해보겠다는 거야, 뭘 해봐.” 했더니 그는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감정인지 모르지만 소리를 지르며
“개뿔도 없는 것이 까불어.”
“뭐, 개뿔도 없는 것이?” 하고 같이 고함을 치며 달려들자
그는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서둘러 출근했다.
그날 저녁 그는 술에 잔뜩 취해서 들어와 아침 출근할 때 했던 부부싸움을 다시 걸어왔다.
분명 2박 3일이란 출장은 거짓이었다.
그날 우리는 알량한 살림살이도 모두 집어던지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서로 이혼하자고 소리치면서 한바탕 했다..
나도 내 정신이 아니었나 보다.
그동안 시집 식구들한테 은근히 멸시당했던 것이 그대로 폭발했는지 모른다.
그날 싸움은 그 사람이 다시 집을 뛰쳐나가 끝이 났으나 하나도 해결된 것은 없었다.
나는 그때 우연하면 참고 살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 집 식구들이 생각한 대로 아무것도 없는 내 처지를 생각할 때 이것도 내 운명이거니 하고 받아들이려고 했는데 그 사람은 그런 것이 아니었나 보다.
무슨 트집이든 꼬투리만 잡히면 이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준 모양이다.
그날 그가 집을 나간 후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무엇이 잘나서 그에게 달려들었나?
남들같이 학벌이 좋은가?
아니면 친정이라도 잘 사나??
그렇다고 말 한마디 제대로 해 줄 수 있는 부모 형제가 있나? 생각하며 밤을 새우면서 많이 울기도 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그 사람한테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 평생 같이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랑하지 않은 사람,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을 남편이라고 생각하면서 평생을 나 몰라라 하면서 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더구나 나는 아무도 의지할 곳이 없는 금실이 언니가 있지 않은가?
지금은 나이가 많으신 어머니라도 계시지만 어머니가 영원히 살아 계실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내가 언니를 보살펴 줘야 하는 것이, 내가 가지고 태어난 운명이 아닌가? 생각하니 남편에 대한 미련은 버려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러나 이혼하겠다고 생각하자 어린 선미가 마음에 걸렸으나 그 사람과 같이 살아도 지금 하는 것을 보면 조금도 선미가 행복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나 혼자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정을 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혼을 요구하면 두말도 없이 이혼하여 시댁으로부터 해방되고 내 마음대로 선미를 키우면서 어머니를 모시면서 언니와 같이 자유롭게 살겠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 후 우리는 한동안 잠잠하며 서로 눈치만 살피며 살고 있었다.
그러다 그 사람이 중국 해외 파견 근무를 나간다고 하자 다시 이혼 문제가 불거져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고 헤어진 것이다.
이혼 당시 선미를 누가 데리고 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나타났으나 선미에게 정이 없는 그는 두말도 하지 않고 선미를 나보고 키우라고 했다.
선미도 엄마 아빠가 이혼한다고 하니까 외갓집에서 자라서 그런지 나와 살기를 원했다.
우리는 합의 이혼으로 위자료는 서로 청구하지 않기로 합의했으며 선미 양육비로 선미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매월 50만 원씩 남편이 나에게 주는 것으로 합의했다.
이렇게 이혼한 나는 선미의 양육 문제도 있고 장애인인 언니와 어머니를 돌보기 위하여 지금 우리가 사는 빌라가 반지하주택이지만 공간이 넓고 방범창이 튼튼하게 되어 있어 어머니와 상의하여 이 집을 사서 이사 온 것이다.
처음 이 집을 살 때 집값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과 맞았으며, 저렴하고 집안 공간이 넓어서 이사했는데 막상 살아보니 어둡고 습기가 많이 차는 것 같아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것을 깨닫고 지상에 있는 집으로 다시 이사 가야지 하면서 1년만, 1년만 하며 산 것이 5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다 보니 열심히 돈을 더 모아 내년쯤 집이 조금 허름하더라도 지상에 있는 집을 구해서 살자고 어머니와 약속하고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매며 열심히 돈을 모으며 살고 있었다.
내가 결혼해서 깨달은 것은 사람은 끼리끼리 만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댁이 조금 더 잘살고 배움이 있다고 해서 우리 집 식구와 나를 무시하던 시댁 식구들의 냉소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가난하고 배움이 없는 나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배움이 많고 부잣집의 아들한테 시집을 간다고 해서 결코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 가족은 비록 배움이 부족하고 재산이 없는 가난뱅이 가정이면서 장애인과 같이 살고 있지만 언제나 서로 격려하고 도와주면서 마음 편하게 웃으며 화목하게 사는 우리 가정이, 은근히 서로 자랑하면서 자신을 내세우는 시댁 식구들보다 더 행복한 가정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