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믿음
물이 이제는 서 있는 우리들의 턱밑에 있는 목까지 차올랐다.
이제는 물이 들어오려고 해도 더 들어올 곳이 없는 상태까지 들어온 모양이다.
즉 창밖의 물 높이와 집안으로 들어 온 물 높이가 거의 같아진 것 같았다.
내 생각으로는 구조대가 출동할 시간이 지났을 것 같은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구조해 주겠다는 사람의 소식은 어느 곳에서도 들려오지 않는다.
사람이란 무슨 일이 있으면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나 내 머릿속에도 의심이 나기 시작했다.
혹시 친구가 119에 신고하지 못한 것이 안 일까?
신고하려다 잘 안되니까? 나를 안심시키기 위하여 거짓으로 신고가 되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당황하며 전화했는데 거짓으로 신고했다고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분명히 어머니도 신고했다고 했는데.
밖에 난리가 나도 보통 난리가 난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동안 텔레비전의 뉴스 속에서 119 구조대 활동을 종종 보지 않았던가?
그렇게 신속하고 어려운 일들도 척척 해내는 119 구조대가 비가 조금 많이 와 집안이 침수된 것인데 이런 것도 하나 해결하지 못한다면 국가에서 운영하는 구조대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더구나 우리가 있는 곳은 망망대해의 바닷속도 아니고 험준한 산속도 아니며 우리나라 수도라는 서울의 한복판이 아닌가?
내 머릿속에는 119안전센터가 시내 곳곳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가 사는 신림동이나 관악구는 구조대가 없는 것일까?
이런 의문들은 점점 의문의 꼬리로 이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혹시 지금 내가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미쳐 가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엄마 구조대는 왜 안 오지?” 하며 걱정 섞인 소리로 징징대던 선미도 이제는 포기했나 문짝에 매달린 채 보이지 않는 창문만 응시하고 있다.
언니는 몸이 뚱뚱해서 그런지 물속에서 서 있는 모습이 나나 선미보다 더 힘들어 보였다.
언니가 매달려 있는 상부 장 문짝의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점점 자주 들려왔다.
이렇게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혹시 뚱뚱한 언니의 체중을 이기지 못하고 문짝이 떨어지던지 벽에 붙은 상부 장 자체가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상부 장에 걸쳐 놓은 내 손에 힘을 줄 수도 없었다.
더구나 내가 걸쳐 있는 상부 장은 선미와 두 사람이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참 쓸데없는 생각을 다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어도 봤다.
시간이 왜 그렇게 안 가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빨리 가야 구조대가 빨리 올 것이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는 언니나 선미가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물이 천장으로부터 40cm 정도 공간을 남겨두고 가득 찼으니 혹시 우리가 있는 공간의 산소가 부족하여 죽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나타났다.
물이 턱밑까지 찬 후는 더 불어나지 않는 것 같은데 머리가 천장에 다 있고 조금만 고개를 숙여도 더러운 오물이 떠 있는 흙탕물이 입과 코로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어른인 나도 벌써 몇 차례 더러운 물이 코로 들어오곤 했는데 장애인인 언니와 선미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무르자 그들의 마음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줘야 조금이라도 불안을 덜 느끼고 버티는 데 도움이 되어줄까?
아까는 행복했던 지난날의 추억을 기억해 보라고 했는데 무엇을 얼마나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생각이 안 난다고 구시렁대던 언니도 어느 순간부터 말이 없었다.
그때 갑자기 내 머릿속에 하나님께 기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사실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우리 집은 어촌에서 아버지가 고기잡이배를 타고 고기를 잡을 때 종종 마을 사람들과 같이 바다에 제사를 올리곤 했지만, 그것이 우리 집 종교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가 방황할 때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본향산에 산제당이란 곳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돌부처를 모시고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이 산제당에 우리 할머니가 일 년에 몇 번씩 다녔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어머니도 할머니를 따라 산제당에 다니곤 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를 따라서 나와 언니도 몇 번 같이 가본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벽에 이상한 그림을 보고 무서워서 어른들 하는 것을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던 기억이 있다.
벽에는 수염이 길면서 무서운 그림이 붙어 있는데 그 앞에다 음식을 차려 놓고 옆에서 산재당에 사는 할아버지가 꽹과리를 치면서
“물러가라~ 물러가라 ~ ”을 반복했다.
그 소리에 맞추어 할머니와 어머니는 열심히 합장하면서 절을 했으며 나와 같이 방에 둘러앉아 있는 사람들도 모두 그림을 바라보면서 두 손을 합장한 채 열심히 비비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쳐댔다.
언니와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어른들 하는 대로 눈을 감고 손을 합장하고 입으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따라서 했다.
어른들은 얼마나 큰소리로 관세음보살을 외쳐대는지 산재당 할아버지가 치는 꽹과리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울면서 큰소리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쳐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