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붉은 주마등 25

日陵 2025. 11. 14. 07:05

 

 

8. 구원의 불빛

 

 

선미와 언니가 잠이 들자 나는 기도하던 것을 일단 멈추고 다시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밖에 비는 완전히 멈추었나 물이 차지 않은 거실의 유리창 너머 물방울이 아까보다 줄어든 것같이 보였다.

그러면 119 구조대의 출동이 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희망이 솟아났다.

 

상부 장 문짝에 매달린 채 창문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내가 지금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또 들었다.

그래서 다리를 움직여 보았다.

분명히 꿈이 아니라 물속에 갇혀 있었으며 퀴퀴한 흙탕물이 내 몸을 감싸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차라리 꿈속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이 날벼락인 모양이다.

분명 오늘 아침 아침밥을 잘 먹고 보험회사에 출근하여 열심히 근무하지 않았던가? 생각하자 오늘의 하루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오늘 아침 어머니가 계시지 않기 때문에 가볍게 우유 1컵에다 토스트 1개 그리고 달걀부침 1개씩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고 내가 먼저 출근했다.

어머니가 계실 때는 걱정 없이 출근했는데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한 다음부터는 장애인인 언니와 아직 어린 선미를 집에 놔두고 먼저 출근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나갈 때마다 선미에게

선미야 이모 출근하는데 네가 옷이랑 가방 좀 챙겨 주고 활동 지원사 선생님이랑 직업재활센터에 간 다음 네가 마지막으로 꼭 집을 돌아보고 전등불을 끈 다음 문단속하고 학교에 가.”하고 당부한 다음 출근하였다.

 

언니는 나이가 40 중반이 되지만 아직도 자기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이런 언니를 어머니는 평생 보살펴 왔다.

그런 어머니가 불쌍하여 요즘은 언니 목욕과 머리 감는 것은 거의 내가 도와주고 있다.

다행인 것은 장애인활동지원사제도가 생겨 요즘은 언니도 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직업재활센터에 지원사와 같이 출근하고 퇴근할 때도 다시 지원사의 지원받고 있으며 퇴근 후에는 지원사가 종종 언니의 머리도 감겨주고 언니 방도 청소해 줘서 어머니나 나의 역할이 조금씩 부담이 줄어들긴 했다.

 

이런 장애인활동지원사가 생기기 전에는 하나서 열까지 어머니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언니였다.

어려서부터 이런 모습을 보아온 나였기에 시댁에서 아이를 더 낳으라고 했을 때 아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낳기를 반대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 온 이유도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언니 직업재활센터에 접근하기 좋은 곳을 찾다 보니 이곳을 택한 것이다.

 

 

언니는 지금도 숫자의 개념이나 글씨의 개념이 없는 사람이다.

글자를 알아 책을 읽기는 하는데 그 내용이 무슨 뜻인지 알지를 못하고 앵무새처럼 읽기만 한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나 밖에서나 혼자 생활이 어렵고 항상 누군가가 옆에 붙어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어머니는 이런 딸을 위하여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평생 혼자의 몸으로 생활비를 벌어가면서 두 딸을 위하여 살아오셨다.

어찌 보면 어머니의 인생은 언니와 나, 두 딸만을 위한 삶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아직 어렸을 때 언니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언니와 다투거나 싸우면서 내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면, 그때마다 어머니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달래주곤 하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마다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래도 내가 출가하기 전에는 큰 도움은 되지 못했겠지만, 종종 나의 도움을 받곤 했는데 내가 집은 나간 후 두 사람만 살면서 늙어가는 어머니는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더 폭삭 늙으신 것 같았다.

거기다 나의 결혼생활이 자기들 때문에 파탄 난 것같이 생각하고 있어 더 가슴 아파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병상에 있는 어머니 모습이 스쳐 갔다.

지금쯤 어떡하고 계실까?

평생 자기만 의지하고 살아오고 살아가는 언니 생각과 아직 어린 외 소녀가 울부짖으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전화 소리에 제정신이 아닐 것 같았다.

병실에서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우리 딸과 손녀를 살려 달라고 애원하면서 매달리고 있지 않을까?

아니면 휠체어를 타고 있는 몸으로 퇴원하겠다고 병원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니시지는 않을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집 소식이 궁금해서 핸드폰을 들고 딸한테 걸었다 손녀한테 걸었다 119에 걸었다 친구한테 걸었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것 같았다.

운명이 얼마나 기구하면 일찍 남편을 보내고 장애인인 자식을 두고 살았을까? 생각하니 지금 내가 처한 상황보다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불쌍한 우리 어머니.

어머니 앞으로는 어머니가 외롭지 않게 제가 열심히 모시께요.’ 다짐하면서

 

하나님 아버지 제발 우리 가족에게 닥친 어려운 이 고통과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제가 지금까지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되갚을 수 있게 우리 가족을 이 위험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하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데 눈앞에 하얀 곰 인형이 둥실둥실 떠 있다.

제법 커다란 곰 인형을 보자 어머니 생각에서 선미의 생각으로 변했다.

그 곰 인형은 선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입학 기념으로 저희 아빠가 사다 준 것이다.

 

그래도 이혼은 했지만 배운 사람으로서 자기 딸이 학교에 들어간다니까 두고만 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붉은 주마등 27  (0) 2025.11.18
붉은 주마등 26  (1) 2025.11.17
붉은 주마등 24  (0) 2025.11.12
붉은 주마등 23  (1) 2025.11.10
붉은 주마등 22  (0) 2025.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