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붉은 주마등 26

日陵 2025. 11. 17. 10:11

 

서양 채송화

 

나는 그 사람이 미워 인형을 버리려 했지만, 아빠가 그리워해서 그런지 아니면 여자아이라 인형을 좋아해서 그런지 선미는 그 인형을 무척이나 아끼고 좋아했다학교에서 집에만 돌아오면 인형을 껴안고 살다시피 했으며 저녁에 잠자리에서는 내가 인형을 멀리 두라고 잔소리해도 꼭 껴안고 잠을 잤다.

 

아까는 보이지 않던 인형이 왜 이제야 보이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인형을 보자 상부 장에 매달린 채 물속에서 고개를 숙이고 잠을 자는 딸이 너무나 애처롭게 보였다. 물이 턱 밑에까지 차서 고개를 조금만 더 숙이면 물속으로 얼굴이 묻힐 것 같은데 물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았다하나님이 우리들의 기도 소리를 듣고 비를 멈추게 하고, 더 이상 물이 들어오지 않게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의 기적이란 생각이 들자 그러면 이처럼 위험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도 우리 가족들이 잘못을 저질러서 벌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기에 이런 큰 시련을 주시는 걸까혹시 우리가 살면서 잘못한 일이 있는가? 지난날을 되돌이켜 봐도 크게 남에게 해를 끼친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내가 죄가 있다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것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언니와 선미 그리고 내가 상부 장 문짝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꼭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모습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불길한 생각 같아서다.

좋은 생각을 해야지

분명 어머니도 119에 신고했다 했고 또 이웃에 사는 사람에게도 부탁했다고 하시지 않았나?

친구도 분명히 비가 멈추고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 119 구조대가 출동할 거라고 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생각 속에 헤매다 나도 모르게 정신이 깜박했나 보다.

 

내가 정신이 들었을 때는 밖에서 손전등 불빛이 왔다 갔다 했으며 창문 밖에서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언니나 선미같이 잠을 잔 모양이다?

아니면 정신을 잃었었나 알 수 없었지만 팔이 너무 아팠다.

왜 그런가 하고 생각해 보니 내가 싱크대 상부 장 문짝에 매달린 채 정신을 놓고 있었나 보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펴보니 선미와 언니는 아직도 상부 장에 그대로 매달려서 자고 있었다.

그런데 창밖에서 물속을 헤치며 사람들이 손전등을 비추면서 우리 창문 밖을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구조대를 기다리던 마음이 하나의 허상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내 몸을 움직여 보자 분명 나는 내가 주방에다 만들어 놓은 거치대 위에 올라가서 있었으며 물에 잠겨있었다.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내 기도 소리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내 준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를 구해주려고 사람들이 나타난 모양이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지금 물속에 사람이 갇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구원의 소리를 질렀다

 

살려 주세요.

여기 물속에 사람이 갇혀 있어요.” 하고 목이 터지게 소리를 쳤다.

그 소리에 선미와 언니도 놀랐나?

엄마 사람이 나타났어.” 하고

은실아, 사람이 왔어.” 했다

나는 힘이 솟았다.

언제부터인가 선미와 언니가 소리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자, 잠을 자고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내 마음을 달래고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혹시 잘못되어 기절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불안 속에서도 깨우지 못한 것은 그들이 잘못되었다 해도 지금의 상황으로서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며 또한 겁이 나서도 건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소리를 하자 몸에서 힘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언니 밖에 불빛이 보이잖아. 사람이 물속에 걸어 다니는 모습도 보이고.”

어디, 정말로 불빛이 보이네하며 좋아했다.

우리 같이 살려 달라고 소리 치자.” 하자

그래 소리 지르자.” 해서 세 사람은 싱크대 상부 장에 매달린 채 고개를 들고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살려 주세요.

물속에 사람이 갇혀 있어요.” 하고 몇 번을 외치자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며

안에 사람이 살아 있어.”

안에서 사람 소리가 들려.”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고 있어

우리가 온 것을 알았나 봐하면서 사람 움직임이 빨라졌다.

 

그러면서 우리 쪽을 향하여 큰 소리로 고함을 쳤다.

조금만 참고 있어요.

우리가 곧 구해 드릴 테니.”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창밖에서 물이 고여있는 창문의 윗부분을 손바닥으로 닦고 손전등을 창문에 대고서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 밖을 보니 아까 내가 보았던 것보다 밖에 물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붉은 주마등 28  (1) 2025.11.20
붉은 주마등 27  (0) 2025.11.18
붉은 주마등 25  (1) 2025.11.14
붉은 주마등 24  (0) 2025.11.12
붉은 주마등 23  (1) 2025.11.10